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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을 방불케 한다던 부평역 주변의 사태를 보면서, 노동자들의 생존과 근로의 인권은 차치하고, 내쫓긴 이들의 몸부림과 절규인 집회와 시위의 인권마저도 그토록 가혹하게 제압해 버리는 공권력의 위험성에 새삼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경제체제에 대하여 그리고 근로와 생존의 인권에 대하여는 원론적인 얘기밖에 할 것이 없다. 단지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강화된 자본주의의 반인권성을 다시금 지적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소수정권인 현 정부에 대하여는 다만 사회민주주의적인 지향성을 방어해 내라는 것 이외에 다른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결코 자랑할 것도, 치적으로 내세울 것도 없는 일이다. 만약 그것이 우리 현대사의 누적된 폐해로서 현 정부로서는 불가피하게 처리해야 할 짐이었다면, 이는 마땅히 우리 역사를 반성하는 국가적 차원의 '석고대죄'로 행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자들의 집회와 시위는 바로 그러한 통과의례의 하나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체제의 결함과 실패로 희생된 무고한 인간들의 외침과 그들의 고통에 대하여는 모두가 겸허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정당성 혹은 불가피성을 강변하고 나아가 그에 따른 엄격한 법집행 만을 되뇌이는 것은 그 자체로 오만한 일일뿐만 아니라, 경제의 결함을 곧 인권과 법의 실패로까지 몰고 가는 위험한 일이다. 무릇 법집행이 약자에게 폭력으로 분출되는 경우는 대개 권위적 우세와 더불어 가치적 정당성이라는 심리적 기제에 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 직접 나서는 공권력의 경우에도, 그것이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고 그 인간적 절규까지도 짓밟는 지경에로 나아가는 데에는, 예컨대 부당한 폭력시위를 엄단한다는 것과 같은 우월의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수가 많다.
나는 수업시간에 법의 사명은 폭력의 순화와 통제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나 자신 '법'을 행한다면서, 오히려 폭력적 충동에 빠지게 되고, 실제 그런 행동을 낳기도 한다. 특히 우리 아이에게 말이다. 왜 그렇게 나는 쉽게 소위 '위협형' 아빠가 되는가? 보다 나약한 대상에 대한 힘의 확인의 충동과 같은 어떤 존재론적 폭력성을 접어 둔다면, 그것은 아빠로서의 권위와 더불어 보다 더 잘 알고 현명하다는 어른으로서의 인지적 및 도덕적 우월의식에 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법과 폭력, 도덕과 폭력은 서로 상극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가까이 붙어있다. 인간의 의지란 간사한 것이다. 모든 법적, 도덕적 권위들이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정태욱(영남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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