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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남문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차라리 죽여라, 죽여!” 한 노동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절규했다. 그들은 한 번은 일터에서, 또 한 번은 ‘국민’의 대열에서 추방돼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두 경우 다 명분은 동일했다. 오로지 경제 회생을 위해서.
2월 20일 대검공안부는 ‘민생공안 원년’을 선포했다. ‘공안’의 주된 임무는 민생불안을 제거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경제회복의 걸림돌은 과감히 척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대우 사태의 서막이 올랐다.
대우자동차에 대한 해법은 하나의 도그마에 가깝다. ‘오직 GM 매각뿐’이라고 국가는 주술처럼 되뇌었다. 그리고 GM 매각을 위해서 인력감축이 필수적이라며 1750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했다. 부평공장에서 정리해고에 저항하며 파업중이던 노동자들은 ‘민생공안’의 조기진압 방침에 따라 경찰에 의해 회사 밖으로 쫓겨났다. 2월 20일 부평역 광장에서는 성난 노동자와 경찰이 충돌했고, 공권력의 무기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득세하자, 당일 오후 산곡성당에 경찰기동대가 전격 투입됐다. 기동대는 그 명성에 걸맞게 산곡성당 제의실까지 노동자를 따라가 기어이 낚아챘다. 부제의 머리를 때리고 예배를 보러온 신자들까지 체포하려다 거센 항의를 받았다.
천주교계가 분노하고, 노동계와 시민 사회단체가 거세게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평역 일대는 서울지방 경찰청, 인천지방경찰청, 경기지방경찰청, 강원지방경찰청, 심지어 충남지방경찰청 소속 전 의경들이 진주했다. 무려 8000여명. 부평역에서 나오는 모든 지하도 출입 계단의 3분의 2는 경찰병력이 질서정연하게 점령했으며, 부평역에서 대우자동차 공장에 이르는 모든 도로에는 경찰 차량이 끝도 없이 늘어섰다. 대우자동차 조합원 조끼만 눈에 띄면 불심검문을 했다. 간혹 불법연행이라고 항의하면 “시키니까 한다”는 말만 기도문처럼 읊었다.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이 끼는 모든 집회는 어느 단체가 주최하든, 무조건 ‘금지’됐다. 2월 20일 부평역 시위로 보아 다분히 폭력 시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공장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에는 경찰이 경비를 섰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회사 안으로 숨어드는 걸 막기 위해” 삼엄한 감시가 일상화되었다. 공장 내부에도 경찰 병력이 상주했다. 회사쪽이 시설물 보호요청을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주류언론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집회까지 금지 당해 아무데도 하소연할 곳 없던 해고노동자들은 1인 시위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대우노동자에게는 1인 시위조차 ‘허가’되지 않았다. 3월 5일 정문 앞에서 25m 간격으로 1인 피켓시위를 하던 조합원 125명이, 3월 8일에는 38명이 연행되었다.
3월 13일까지 671명이 연행되어 20명이 구속 수감되었고, 19명이 수배됐다. 일자리를 잃어 돈이 궁한 상태라 병원에 가지 못해 안으로 골병이 들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방패와 곤봉으로 맞아 쓰러졌으나,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다 결국 이틀 뒤에 입원하고 말았다. 3월 7일 부평공장이 다시 열면서 출근 버스를 저지하려던 해고노동자 가족들은 땅바닥에 질질 끌려 다녀 온 몸이 멍투성이였고, 갓난 아이들은 군화발에 채여 그 날 이후 소스라쳐 잠에서 깨곤 했다.
길고 외로운 싸움에 서광이 비친 것은 인천지법이 “노동조합 사무실에 노조원들이 출입하는 걸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린 4월 6일이었다.
4월 10일 금속연맹 법률원 박훈 변호사와 5백여 노조원들이 공장 남문 앞에 모여 노조 사무실에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은 법원의 결정도 무시하고 상부지시라며 막무가내로 막아섰다. 노동자들은 항의 표시로 웃옷을 벗고 누웠다. 그 직후 남문 앞은 노동자의 비명소리, 그리고 경찰의 살기 어린 군화발 소리로 뒤덮였다.
“예전에는 경찰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는 한 노동자의 몸서리는 쫓겨난 자를 짓밟으며 자기 존재를 과시하고, 결국 사회적 약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왔던 ‘공안’의 변함없는 본질을 웅변한다. 달라진 점이라면 파업하고 시위하면 과거에는 ‘빨갱이’로 몰아붙이던 것이 이제는 ‘경제회복 저해사범’으로 바뀐 것. ‘대공공안’을 내걸든 ‘민생공안’을 내걸든 공안세력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자들은 ‘분쇄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거기에 생존권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경제회복을 위해 일자리를 잃은 자들이 이제는 경제회복을 위해 죽은 듯 지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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