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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확신을 가지고 산다고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데 확신이 어디 있느냐고 냉소하기도 한다. 어쨌든 확신이야말로 각자의 몫이기 때문에 어떠한 확신을 갖든 그것은 각자의 자유이다. 또 어떤 확신을 예찬하거나 비난하는 것도 국가의 공증사항이 아니라 사람들의 양식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권력은 무엇을 처벌할 수 있는가? 자유주의자 밀이 말한 바와 같이 국가권력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에 대해서만 발동되어야 한다. 즉 처벌될 것은 구체적인 행위이지 확신이나 사상이 아니다. 보안관찰처분과 관련하여 이러한 기본원칙을 훌륭하게 관철시킨 현정덕씨 판결(2000/4/20 서울고법)에서 느낀 유쾌함은 이번 서준식 대표에 대한 판결(2000/9/27 서울고법)을 보면서 이내 사라졌다.
확신범은 ""종교적, 정치적, 도덕적 근거에서 확신을 가지고 일반형법―확신범만을 처벌하기 위한 특별형법이 아니라!―을 위반하는 자""이다. 즉 확신범이란 구체적으로 일반형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일단 범죄자가 되는 것이고, 범행의 동기를 고려하였을 때 확신범으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확신만으로는 애초부터 범죄가 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확신범을 말하는가? 예컨대 정치적 동기에 의한 살인범(확신범)을 확신 때문에 통상의 살인범보다 가혹하게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신범의 특권이 이야기된다. 이것이 자유주의 형법철학의 기본이다.
그런데 확신범을 처벌하는 우리의 특별형법들은 귄위주의적인 형법답게 확신범을 관대하게 처우하기는커녕 더욱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다. 확신에 입각한 일반형법의 위반자를 가중처벌하는 것은 물론이고, 극단적으로 탈선하여 일반형법에서는 범죄가 되지 않는 행위까지도 오로지 확신을 이유로 처벌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확신자체를 처벌기준으로 가중처벌의 기준으로, 확신의 철회여부를 석방의 기준으로 보호관찰처분의 취소기준으로 휘두르는 것은 국가권력의 한계를 넘어가는 전형적인 테러형법이다.
물론 국가는 체제를 부인하는 자들을 감시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그 때에도 처벌권력이 타격해야 할 것은 확신이나 사상이 아니라 일반형법에 위배되는 구체적인 행위들이어야 한다. 그 나머지는 자유이다. 개인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확신을 무한정 캐내어 죄주려는 우리의 감시와 처벌의 체계는 확실히 자유주의적으로 교화되어야 한다.
- 이재승 씨는 국민대 법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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