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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 성명 -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군인의 인권은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모든 인류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및 평화의 기초이다.’
- 「세계인권선언」 전문 中
인권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우선할 수 있는 가치는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인권센터는 2009년 설립 이래 인권의 사각지대로 꼽혀온 ‘군대’에 이와 같은 세계인권선언의 가치를 뿌리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였습니다. 구성원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조직이 평화와 시민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70주년입니다. 많은 이들이 ‘예외’라 부르며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인권의 가치를 좇아 변화하고 있습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사들의 월급이 대폭 인상되었고, 일과 후 핸드폰 사용이 2019년 상반기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장군들의 노예로 불리던 공관병이 사라졌고, 지휘관이 임의로 사람을 수감하는 반인권적 영창 제도도 새로운 징계벌로 대체될 예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인정되었고, 대체복무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철옹성 같았던 군대에도 시민의 힘으로 인권의 싹이 느리지만 튼튼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인권의 역사는 피와 눈물의 역사입니다. 우리 군에서도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인권 침해 피해자로 유명을 달리하거나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2011년, 노우빈, 정희택, 이재연 훈련병 등이 사망한 후 엉터리로 운영되던 군 의료체계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2014년 28사단에서 윤승주 일병이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이 발생하면서 군인의 인권이 세상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2013년에 있었던 육군 15사단 여군 성추행 사망 사건으로 군내 성폭력 사고의 심각성과 가해자 옹호에 열을 올리던 군사법원의 폐해도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고, 다치고 나서야 무언가 변화하는 안타까운 역사를 끝맺자면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여전히 많은 군인들이 인권을 침해당하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인권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그간 목소리 내지 못했던 부조리에 대한 지적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병사들의 처우가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초급간부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기만 합니다. 도처에서 통제 일변도의 부대 운영 하에 초급간부들의 사생활을 일일이 통제합니다. 통장 거래 내역을 제출할 것을 강요하고, 차량 구매를 금지하고, 무단으로 개인 숙소에 들어가 정리 상태를 점검합니다. 수많은 초급간부들이 기초적인 생활도 불가능한 낡은 숙소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실제 초급간부 자살률은 전체 자살 사망 사건의 00%나 됩니다. 초급간부의 인권 문제는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병영부조리 역시 여전히 심각합니다. 계급을 권리로 아는 그릇된 인식 속에 벌어지는 사적명령, 하급자를 노예 부리듯 하는 부당지시는 실로 천태만상입니다. 2017년 군인권센터 인권 침해 상담 통계(총 1,036건)에 따르면 전체 사건 중 496건이 병영부조리에 해당합니다. 특히 2017년에 박찬주 대장 공관병 갑질 사건이 발생하여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육군 50사단 강철회관에서 사단장(소장 정재학)이 병사들에게 서빙복을 입혀 수시로 호화 만찬을 열어 물의를 빚는 등 장군들의 갑질 행태가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상관의 갑질은 군의 사기와 기강을 좀먹는 이적행위입니다.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하고, 재발방지대책을 강력히 세우지 않는 한 이러한 행태는 절대 근절될 수 없습니다.
여군 성폭력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13년 육군 15사단 여군 성추행 사망 사건의 가해자를 1심 군사법원이 집행유예로 풀어주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2심에 이르러서야 실형을 선고한 바 있었음에도 5년이 지난 지금도 군의 대처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해군에서 ‘남자를 경험하게 해주겠다.’며 상관이 성소수자 여군을 교정강간 하고, 이를 보고 받은 상관이 피해자를 또 다시 강간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음에도 지난 11월 고등군사법원은 가해자들에게 징역 10년, 8년을 각각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장군에 의한 성추행 사건도 끊이지 않지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외부의 비판이 있고서야 가해자를 보직 해임하는 악습 역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도를 정비하고 관련 기구를 새로 만들어본들 군 수뇌부와 군사법원이 가해자의 편에 서는 한 군내 성범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과 상처를 주며 사법체계를 흐트러뜨리고 있는 군사법원을 즉시
폐지하고 평시에는 군인도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게끔 해야 합니다.
군인 인권 문제를 전담할 ‘군인권보호관’의 설치도 시급합니다. 군인권보호관은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42조에 따라 설치되어야 하며, 설치를 위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등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이나 국방부의 이견으로 2년이 넘게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바, 군부대 불시방문권과 군으로부터 독립적 지위가 보장된 군인권보호관을 조속한 시일 내에 설치해야 할 것입니다.병사 자치 기구인 대표병사제도 도입도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합니다. 공군에서 이미 실시중이기도 한 대표병사 제도는 독일, 프랑스 등의 선진국 군대에서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대표자를 통하여 복무와 관련된 의견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개진할 수 있게 된다면 병사 역시 군의 일원으로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전군 차원으로의 확대가 검토 중인 만큼 각 군의 특성에 맞게 제도 도입의 방향을 심도 있게 토의하고, 관련 법령의 개정도 수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민간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군대가 언제든 민주공화국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불과 2년 전, 전 국민이 불의한 정권에 맞서 거리에서 촛불을 들던 때에 기무사령부를 비롯한 일부 그릇된 정치군인들은 계엄령과 위수령을 통하여 시민을 총, 칼로 짓밟고 민주질서를 무너뜨리려고 모의한 바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란음모를 주도하였던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미국으로 도피한 채 검찰의 수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내란음모에 연계된 이들을 발본색원하여 반드시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 다시는 정치군인들이 이러한 일을 획책할 수 없도록 국방 문민화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국방부 내 비군사영역의 민간 개방을 확대하고 문민 국방장관의 탄생을 앞당겨야 할 것입니다. 민주공화국의 군대는 마땅히 시민에 의해 통제되어야 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이 태어난 이래 70년 간 인권의 역사는 느리지만 굳건하게 새 걸음을 내딛어 왔습니다. 군인이‘제복 입은 시민’으로 온전히 인정받는 날까지 군인권센터 역시 시민의 힘으로 군대를 바꾸는 일에 주저함 없이 나설 것입니다. 군인의 인권은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2018. 12. 10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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