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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벼르고 별러 돈 주고 가는 곳에 날마다 공짜로 드나들 수 있는 것, 신문사 문화부에서 일하는 특권이자 재미다. 일 나가는 동료들이 ""어느 쪽으로 가세요"" 물어올 때 충무로 시사실이나 대학로 연극판에 간다고 말하면 열이면 열 ""부럽다"", ""월급받고 놀러다니네"" 토를 달게 마련이다. 분에 넘쳐 하는 소리긴 하지만 문화를 취미나 여가활동이 아니라 직업으로 접근해야하는 괴로움도 만만치 않아서 하루 3-4편 내리 영화를 봐야 하거나 객석에 딱 연출가와 기자 둘만 앉아 있는 연극무대를 지켜 볼 때는 엉덩이에 뾰류지가 돋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십 몇 년을 객석을 지키며 얻은 깨달음 하나는 한국에서 문화란 건 대중문화까지를 포함해서 참으로 '있는 자들 놀음'이라는 것이다. 뭐든 즐기고자 하면 시간이 있어야 하고 돈이 두둑해야 하며 편안한 마음이 우선돼야 하는데 대부분 한국 사람들에게 이 셋이 다 충족되기는 참 어려운 노릇이다. 막말로 둘이 웬만한 하룻밤 음악회나 연극에 드는 비용이 5-10만원 안팎이고, 무료에 시간 제한이 없어서 가장 손쉬운 문화활동이라 쳤던 미술전도 이제는 영화표값을 웃도는 입장료를 받는 곳이 늘어나서 갈수록 문화 장벽은 높아지는 추세다.
장애인들 경우는 아예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통로가 태어나면서부터 꽉 막혀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전시품을 만지면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을 때나 멀리 공연장에 갈 수 없는 신체장애아들을 위해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무대를 펼쳤을 때 참가자와 그 부모들이 감사의 눈물을 떨궜던 일들은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다.
11월 2-5일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는 '제1회 장애인영화제'는 영화제가 유행처럼 넘쳐나는 가운데서도 보석같은 영화제라 할 수 있다. 농아들을 위해 한국영화에도 자막을 넣고, 시각장애인들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화면 해설처리를 하는 외에 청각장애인들이 영화 음향을 느끼도록 별도 기기를 사용한다는 조직위쪽 설명을 들을 때 가슴 한 구석에서 뭉클한 게 솟아올랐다. 국립극장 대극장 1층에서 주차장의 그것처럼 널찍하게 휠체어그림을 그려넣은 장애인 전용 공간을 보았을 때 찡했던 그 느낌이었다.
5년째 '인권영화제'를 이끌어오고 있는 서준식씨가 제주 4 3사건을 다룬 <레드헌트> 상영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난 자리에서 한 말을 이랬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권하면 군사독재시대에 시민적, 정치적 차원에서 벌였던 양심수니 고문이니 하는 것만 생각해요. 그러나 인권이란 노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문화를 즐길 권리 등 훨씬 넓은 의미의 권리를 포함합니다. 한마디로 자원의 배분이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인권은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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