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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공장으로""
울산 현대중공업 내 '현장조직' 가운데 하나인 '전진하는 노동자회' 사무실에 걸린 글귀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대기업 노조로는 유례가 없던 128일간의 파업투쟁(88-89년)과 최초의 골리앗 농성투쟁(90년) 등을 거치며 '한국 노동운동의 최정예'로까지 불렸다. 그러나 이제는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의 사업장을 '절망의 공장'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현대중공업을 방문한 것은 지난 10월 18일. 미리 노조측에 방문을 신청하고, 이를 노조가 회사측에 통보한 상태였다. 그러나 통보를 접수한 회사측(노사협력실)은 별다른 해명 없이 기자의 출입을 불허했다. 현대중공업의 단체협약 상 외부인사의 회사출입 문제는 '노사협의'로 처리되는 사안이긴 하지만, 실제론 노조 사무실 출입마저도 회사측의 판단에 따라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중공업의 출입구에서부터 통제의 일면은 드러나기 시작했다.
노조 출입도 '회사 허락' 아래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9월 19일부터 조합 사무실 앞에서 천막농성투쟁을 전개해 왔다. 이유는 회사측이 일방적으로 임금 인상안을 던져 놓은 채 교섭을 중단한 데다, 강요와 회유를 통해 조합원들로부터 회사측의 안을 지지하는 '서명'을 받아버렸기 때문. 이로 인해 노조가 농성에 돌입하자 회사측은 경비대와 관리자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전 같으면 노동자 상당수의 분노를 살만한 일이었음에도, 노조 집행부의 농성을 지지하면서 집회에 참석하는 인원은 고작 3백여 명, 2만여 조합원 가운데 1.5%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러한 현상은 회사측이 노동자들의 집회참가 사실을 일일이 촬영 또는 기록해 소속 부서로 통보하면서 이들을 감시통제해 온 결과물이다.
전명환 노조 분소장(중전기 부문)은 ""지난 17일 회사 내 집회에 참석했던 한 대의원이 관리자에게 불려가 '왜 집회에 참석했느냐'는 질책을 받았다""며 ""집회에 참석하면 반장, 팀장, 운영과장, 부서장, 이사 순서로 불려다니며 면담을 하고 '집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합원들 대다수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집회참가자 일일이 감시통제
현대중공업 노조의 어려움은 노조 대의원의 성향에서도 드러난다. 현 노조대의원 가운데 무려 70%가 회사측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구성됐다는 것.
이는 대의원선거에 이미 회사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회사측은 20명의 추천서명을 받아야 대의원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규정을 악용해 '껄끄러운' 후보의 출마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입장에 반하는 후보자를 추천한 노동자에게 서명취하를 종용하거나, 심지어 친인척을 통해 후보자의 출마 포기를 종용케 하는 일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 노조측의 주장이다. 결국 관리직인 부서장이 추천하는 사람들로 대의원 자리가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노조는 지난 3월 한 관리직 간부가 대의원에게 ""어제 임시대의원 대회에서 수고 많이 해 주셔서 고맙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활약해 주시기를 부탁한다""는 내용의 전화를 했다고 주장하며, 이 간부를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발해 놓은 상태다.
회사측 개입, 대의원도 무력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회사측은 노사교섭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거나 조합원들을 협박 회유하기까지 했다.
올 7월부터 시작된 노사교섭에 있어 회사측의 입장은 ""임단협 통합협상""이었던 반면, 노조측의 입장은 ""후퇴한 단협 원상회복 및 전임자 문제 해결 뒤, 임금협상""이었다. 그러나, 회사측은 교섭이 진행중이던 9월 5일, 임금인상 안을 봉투에 넣어 노조 사무실에 던져놓고는 교섭을 중단해 버렸다. 이어 관리직을 동원해 조합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회사에서 제시한 최종안을 수용할 것을 건의한다""는 내용의 건의서에 서명할 것을 강제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회유와 협박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던져진 미끼는 ""서명에 참여하는 자에 한해 격려금을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노조측은 회사로부터 서명을 강요당한 조합원들의 진술을 다수 확보해두고 있다.
한때 '잘 나가던' 현대중공업 노조가 이처럼 회사측에 일방적으로 몰리고, 그 와중에 노동자들의 기본권마저 뺏기고 있는 배경은 94년 말과 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조 지도부의 투쟁 방기에서 비롯된 조합원들의 이반 현상과 회사측의 치밀한 노무관리 정책이 맞물리면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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