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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국가의 일방적 공식기억 답습하는 서울수복기념관 건립 구상 반대한다
–국가의 가해 책임 묻고 전쟁피해자 기억하는 공간 되어야–
또 하나의 반성 없는 전쟁기념시설이 건립되려 하고 있다. 오늘(12/23) 서울시는 (가칭)서울수복기념관 건립 추진 의사를 밝혔다. 서울수복을 “한국전쟁 국면을 전환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하면서, 이를 기념하는 독립적 전시관의 부재, 서울수복 관련 참전용사들의 염원 등을 추진의 이유라 설명했다. 초기 구상안에는 전쟁사 전시 공간 · 참전용사 명비 등의 추모 공간 · 모의 사격훈련이나 VR을 이용한 고지전투 체험 등의 체험 공간이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졌다.
초기 구상안으로만 본다면 (가칭)서울수복기념관 역시 용산 전쟁기념관을 비롯하여 인천과 낙동강 방어선 등 전국 각지에 세워진 전쟁기념시설의 내용을 답습하는 천편일률적 기념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주도로 건립되는 전쟁기념시설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전쟁기억만을 담고 있으며, 그렇기에 전쟁기억에 대한 독점적인 권위를 갖는다. 정부 주도의 한국전쟁 관련 기념시설 거의 전부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등 국가의 책임은 배제한 채 북한의 잘못을 강조하고 전쟁영웅과 승리만을 내세우는 국가주의적인 전쟁기억으로만 채워져 있다. 이른바 한국전쟁의 ‘공식기억’이다.
‘공식기억’은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국가의 책임을 묻는 다양한 목소리를 모조리 내부의 적(빨갱이)으로 규정해 탄압하는 대표적인 명분으로 기능해왔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조사에 따르면, 9.28 서울수복 당시에도 서울지역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의 학살이 있었다. 한강 인도교 폭파로 인해 피난을 가지 못한 서울 주민들 중 상당수는 수복 직후 북한에 부역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미 국무부에 보고된 문서에는 이승만의 명령으로 서울에서 약 5천 명의 민간인이 부역혐의로 학살되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진화위에 개별 접수된 사건만 봐도 종로·마포·뚝섬 등에서 각기 수십 명의 피해자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진화위는 당시 대부분의 학살이 ‘직결처분권’에 의한 불법적인 공권력 남용이었음을 밝히면서, 최종적 가해책임은 국가에 귀속됨을 분명히 했다.
서울시는 이번 건립을 통해 역사의 아픔을 공유하겠다 말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전투사 중심의 전시와 참전용사만을 위한 추모뿐이다. 참전군인을 위한 추모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전투에 수반된 국가의 가해 및 민간의 피해를 담지 않는 전쟁기념시설은 전쟁의 실체를 보여주지 않을 뿐 아니라 ‘공식기억’이 답습해 온 역사적 사실의 왜곡과 배제의 반복에 불과하다. 더불어 서울시의 구상안에는 모의 사격훈련과 VR을 이용한 고지전 체험 등의 시설도 담겨 있다. 이는 전쟁의 참상에 대한 경각심은커녕 전쟁을 흥미 위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에서 평화인권교육의 관점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시는 지난 12월 11일 노들섬에 한강 인도교 폭파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위령비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사실을 밝히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이러한 태도와 서울수복기념관 구상안에 담긴 태도는 그야말로 모순적이다. 내년은 한국전쟁 70주년이다.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어떤 평화를 만들어 갈 것인지 준비가 필요한 때다. 그런 점에서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일방적 ‘공식기억’을 답습하는 또 하나의 전쟁기념시설 건립을 반대한다. 설령 서울수복기념관이 지어진다 하더라도 그 공간에는 전쟁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고 국민의 목소리를 담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내용이 담겨야 할 것이다.
2019년 12월 23일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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