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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도 인권영화제를 개최했고, 국가보안법 반대운동도 여전히 하고 있으며, 보안관찰법도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더라도 내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91년 내 사건은 유서대필사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보안관찰법은 거기다 끼워 넣은 것에 불과했다. 97년 사건도 마찬가지다. 보안관찰법은 주된 죄목이 아니었다. 그러나 91년, 97년에 주되게 기소된 죄목은 다 무죄를 받거나 거의 무의미해지는 판결을 받았고, 지금은 보안관찰법이 가장 주된 죄목이 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이것은 보안관찰법이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용도가 변경된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법이란 한번 만들어지면 없어지기 어렵다. 보안관찰법의 모태였던 사회안전법은 70년대 비전향장기수가 무려 4백명 이상에 달하고, 베트남에서 미국이 패배한 조건 아래 국회에서 심야에 날치기된 법률이었다. 그 법률도 87년 6월 항쟁을 거쳐 세상이 바뀌려 하니까 보안관찰법으로 바뀌었다. 그후 다시 10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 다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비전향장기수가 북으로 가는 등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보안관찰법 역시 시대에 맞춰 바뀌거나 없어져야 할 법률 아닌가? 자기의 존립근거를 잃은 법률이 그 생명을 유지할 때 남는 것은 역기능밖에 없다. 이런 법률로 내가 왜 처벌받아야 하는가?
나는 인권운동을 하기 때문에 인권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에 관심이 많다. 인권이 발전하기 위해선 나처럼 법을 어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범법자, 미친놈' 소리를 들어가면서 법을 어기는 사람이 많이 있어야 인권상황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때로는 사회통념에 밀려가지 않는 판사들의 용감한 판결이 있어 왔다. 이런 모든 사람의 노력이 인권을 신장시켜온 것이다.
바라건대, 본건 판결을 내릴 때 인권을 생각하며 판결을 내려달라. 우리사회에서 인권이 발전되기 위해서 뭘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판결을 내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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