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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상 편의와 사생활 보호는 항상 대립하고 갈등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통신비밀 보호의 예외사항을 엄격히 규정하는 법률들이 제대로 정비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개인의 통신정보를 이용한 수사는 보편화되고 있어, 국민들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현재 일선 경찰들은 경찰서장 공문 하나로 피의자 및 피내사자들의 모든 통신정보를 제출하라고 전기통신사업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경찰이 요구하는 정보는 가입 해지 변경 일시중지 일자 및 통신일자, 통신 개시 종료시간, 상대방번호, 서비스종류, 온라인 log 기록, 심지어는 발신기지국 위치와 실시간 ID접속지까지 망라돼 있다. 물론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ID는 기본이다.
근거법률 고무줄 적용
이러한 경찰의 수사는 애초 전기통신사업법을 근거로 시작됐다. 개정되기 전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는 “전기통신사업자는 수사상 필요에 의하여 관계기관으로부터 전기통신업무에 관한 서류의 열람이나 제출을 서면으로 요구받은 때 이에 응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지난해 1월 28일 수사기관이 조회할 수 있는 내용을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입 또는 해지일자”로 엄격히 제한하도록 개정했다.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으로는 더 이상 통신정보를 포괄적으로 수집할 수 없게 되자 경찰은 형사소송법 제199조 ‘수사 및 필요한 조사’ 규정을 들이댔다. 여기에는 “조사에 관하여 공무소 기타 공사단체에 조회하여 필요한 사항의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때 강제수사가 아닌 임의수사는 법원의 영장 없이도 가능해, 통신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경찰의 관행이 이어질 수 있었다.
영장 없는 통신비밀 노출 안 된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권두섭 법규차장은 “경찰이 핸드폰 통화내역 등을 조회하는 것은 강제수사냐, 임의수사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며, “국민의 기본권을 얼마만큼 침해하는 것이냐 하는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인의 사생활을 그대로 노출하는 통신정보를 경찰이 조회할 때는 “법원의 영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실장도 “경찰이 정보통신서비스제공업자들에게 ID접속지, log 기록 등을 요청할 때 법원의 영장은 기본”이라고 답했다.
한편 정보통신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0년 수사기관이 통신정보를 조회한 건수는 16만4백85건으로, 99년 15만4천3백90건에 비해 3.9%가 증가했다. 이 중 핸드폰 통화내역 조회는 11만8천3백9건으로 전년에 비해 37.8% 증가했고, PC통신은 3천4백65건으로 무려 222.3% 증가했다. 반면, 법원의 허가에 의해 엄격히 집행되는 감청은 2000년에 2천3백80건 실시돼, 99년 3천2백34건보다 26.4%가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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