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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경찰은 맘만 먹으면 집시법의 갖가지 조항을 들먹이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한다. 폭력시위우려 시간장소제한 시설보호 등의 집회금지조항, 신고 해산 규정, 금지통고와 질서유지선 제도 등 현행 집시법에는 갖가지 독소조항들이 있기 때문.
집시법, 잘못된 출발과 유신개악
62년 12월 31일 제정된 집시법은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개정됐다. 제정 당시 신고 금지통고 이의신청 해산 등 집시법 제도의 뼈대가 만들어졌으며, 이미 △일출전 일몰후 △대사관 등 2백미터 이내 △주요도로 △중복집회 등 집회금지 조항이 존재했다.
이후 집시법은 유신독재의 시작과 함께 73년 3월 12일 대대적으로 개악됐다. 집회의 목적, 일시, 장소, 참가예정인원 이외에 주최자 및 연사의 주소, 성명, 직업, 연제 및 연설의 요지 등 집회신고 항목이 대폭 늘어났으며, 집회금지통고에 대한 이의신청 제도가 폐지됐다. 집회신고시간도 48시간 전에서 72시간 이전으로 대폭 강화됐다.
또한 집회금지 사유로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가 신설됐으며, 이는 89년 전면개정 시까지 집회 및 시위에 대한 원천금지 조항으로 악명을 날렸다. 그 외에 집회 주최자 금지행위의 목록에 △관공서, 군부대, 학교, 연구기관, 도서실, 의료기관 등의 주변에서 업무나 학업에 지장을 주는 소란행위 △교통경찰관의 지시를 위반하거나 교통소통을 현저히 저해하는 행위가 추가됐다.
5공 쿠테타 후 다시 개악
73년 12월 18일 72시간 전 집회신고규정이 48시간으로 다소 완화된 집시법은, 80년 12월 18일 국가보위입법회의 시절 또 개악됐다. 시위의 개념이 확대되고, 이전에는 옥외집회만 허용됐던 경찰관의 출입이 모든 집회로 확대됐다. 이는 곧 집회금지 및 통제의 대상이 확대됐다는 뜻.
62년 집시법 제정 이후 거듭된 개악에 따라, 집시법이 전면개정된 89년까지, 거의 모든 반정부 집회는 예외없이 불허됐다. 집회와 시위를 보장해야 할 집시법이 오히려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주요한 법적 근거가 됐던 것.
87 88년 대한변호사협회의 인권보고서는 당시 집시법에 대해 “‘치안유지’라는 명분하에 특히 반체제적 정치운동, 정권비판 활동, 노동운동 등 그 시대의 정부정책에 장해가 되는 활동을 권력적으로 배제하는 ‘치안형법’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반민주 집시법 개정, 89년 불가피
그러나 80년대 계속해서 성장한 민중운동은 87년 직선제와 88년 여소야대 정국을 쟁취하고 각종 반민주악법의 개폐문제를 전면화했다. 또 89년은 전민련, 전농, 전교조가 결성되는 등 민중운동이 한껏 고조된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사회보호법이 개정되고, 사회안전법이 폐지되고 보안관찰법으로 대체됐으며, 집시법은 3월 29일에 전면개정됐다.
전면개정된 집시법은 △시위의 개념을 ‘다수인이 공동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진행’하는 것으로 축소하고 △집회금지 사유를 대거 삭제해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경우’로 한정하고 △금지통고에 대한 불복절차규정을 부활하고 △대사관 등 2백미터 이내 금지 규정을 1백미터로 완화했으며 △주최자의 준수사항도 대폭 축소했다.
경찰, 법 조항 악용은 여전
하지만 금지통고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집회금지 사유가 여전히 모호하며, 시간과 장소의 금지규정은 여전히 과도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89년 주요 반정부 집회를 모두 금지하면서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집회는 선별허가했다.
당시 7월 9일 경희궁 공원의 ‘전교조탄압저지 및 합법성쟁취 국민대회’는 파키스탄, 오만 대사관 등으로부터 1백미터 이내라는 이유로 불허당한 반면, 4월 14일 같은 장소에서 상이군경회가 주최한 ‘민주화위장 좌경폭력세력 규탄궐기대회’는 허가됐다. 또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11월 5일 한국노총 주최의 ‘노동법개정 및 경제민주화촉구 결의대회’는 무사히 치루어진 반면, 11월 12일 지역 업종별 전국회의의 ‘노동악법철폐 및 전노협 건설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는 불허됐다.
99년의 개악과 역사의 교훈
집시법은 89년 전면개정 후 3차례 수정을 거쳐 99년 5월 24일 또 다시 개악됐다. 당시 집시법 개정은 조용히 추진되는 바람에, 시민사회와의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정된 집시법은 “주거지역이나 이와 유사한 장소에 대해 거주자 관리자가 …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한 경우”를 집회금지 사유로 추가하고, 질서유지선 제도를 새롭게 도입했다.
시설보호 조항은 올해 대우차, 효성 등 노동자투쟁 및 대학내 외부단체 집회 등에서 집회를 가로막는 근거로 악용되고 있고, 지난 7월 11일 건설운송노조 집회에서는 질서유지선 제도도 악용됐다. 당일 종로경찰서는 이용식 건설산업연맹 위원장과 시위용품들이 질서유지선을 벗어났다고 시비를 걸고, 이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을 강제 연행해 난지도 등으로 해산시킨 것.
결국 조금이라도 모호한 집시법 조항은 여지없이 경찰에 의해 악용되어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해 왔다. 집시법의 역사는 민중들의 투쟁이 없이는 결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정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대대적으로 침해당하는 오늘, 개악과 남용으로 점철된 집시법의 역사는 오히려 집시법 개정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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