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폭격을 맞은 듯 마을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주민들은 불타버린 잔해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한 수심에 깊이 잠겼다.
19일 새벽 2시경 서울 송파구 장지동 화훼마을에서 발생한 화재로 이곳 비닐하우스 27개 동이 전소되고, 비닐하우스 내에서 살던 1백17가구 3백67명이 오갈 데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공공근로나 일용직 노동 등에 종사하는 영세민들이기에 재해복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주민들은 “외부의 지원, 특히 구청의 지원”을 고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관할 송파구청의 입장은 싸늘하기만 하다. 이 지역이 불법 무허가 주거지이기 때문에 복구를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송파구청 담당 공무원은 “3일 간 구청에서 지원을 나가겠지만, 그 후부터는 주민들이 알아서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 잠자리에서 느닷없이 화를 입은 탓에 “종이 한 장 들고 나오지 못했다”는 주민들은 현
재 화재피해를 입지 않은 10여 동 이웃주민 집과 마을회관, 친척집 등에 분산 숙박하고 있다. 한 주민은 “옮겨갈 만한 곳이 있다면 이런 곳에서 살았겠냐”며 “겨울철이라 일거리도 없는 데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화재 위험 안고 사는 영세민들
잿더미로 변한 화훼마을은 지난 86년부터 영세민들의 거주가 시작된 지역이다. 당초 꽃을 재배하기 위한 비닐하우스단지였지만, 토양이 맞지 않아 주거지역으로 변모하게 되었고, 초기 50여 세대에 불과했던 주민의 규모도 현재는 2백17세대에 이르고 있다.
화훼마을은 3년 전에도 전기누전에 의한 화재피해를 입은 바 있으며, 이번 화재의 원인 역시 전기누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무판자로 지붕을 엮은 비닐하우스 건물이기에 빗물이 자주 새고, 따라서 주민들은 항상 전기누전과 그에 따른 화재의 위험 속에 살아 온 것이다.
주민들은 관할 관청이 이곳을 정식 주거지역으로 인정해줬다면 이번과 같은 재해는 예방 또는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허가 주거지라는 이유로 주거환경에 대한 당국의 지원과 배려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커다란 재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마을 대표 서형택 씨는 “수돗물이라도 공급됐다면 이렇게까지 불타버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주소지 인정이 숙원
한편, 화훼마을 주민들은 이번 화재를 계기로 당국이 이곳을 정식 주거지역으로 인정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정식 주거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겪어온 피해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화훼마을엔 주소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가정마다 각기 다른 지역에 주민등록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자녀들은 주민등록지에 따라 먼 곳에 학교를 배정 받고 장거리 통학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다. 또 수도가 공급되지 않아 지하수를 끌어다 사용하고 있는데, 철분이 다량 포함된 지하수다 보니 손이 갈라지고 찢어지는 등 늘 피부병을 안고 살아야 한다. 결국 식수는 인근 약수터에서 길어다 쓰거나 친척집 수돗물을 얻어다 끓여 먹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 주민들의 숙원은 주소지를 부여받는 것이다. 그러나, 관할 관청은 “원예용으로 지어진 비닐하우스는 주거지역으로 인정하기에 부적합하며, 불법점유지를 주거지역으로 인정할 경우, 행정처리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이유로 화훼마을을 정식 주거지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인근 문정동 개미마을 주민 윤복영(주소지되찾기운동본부 본부장) 씨는 “무허가라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주민들에게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며 “어서 이 지역을 재해구역으로 지정하고 복구작업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