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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특구 지정 명동대축제를 알리는 청사초롱과 만국기가 가득한 명동, 6월 항쟁 '13주년'을 맞는 명동성당에선 우연의 일치인지 '13개'의 농성단이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저마다 수배자를 대여섯씩은 거느린 농성단이 내건 사안은 미군철수, 매향리 사격장 폐쇄, 노동시간 단축, 임금의 아이앰에프 이전 원상회복, 정치수배해제, 국가보안법 철폐 등 우리 사회 문제의 종합전시장을 이루고 있다.
6월 항쟁에 대해서 잘은 모른다고 수줍어하는 한 대학생은 ""그 시대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가 여전히 많지 않겠어요?""라며 '미군에 의한 학살만행 진상규명을 위한 전민족 특별조사위원회' 농성단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한총련 대의원이란 이유로 수배된 80명 학생의 이름을 걸어놓고 24일째 농성중인 이동진(94년 경상대총학생회장) 씨는 삭발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 씨처럼 삭발을 한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길게는 7년에서 짧게는 2년까지 정치수배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힘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주임신부님이랑 성당 직원들이 나가라고 매일 성화부리는 것만 빼고요""라며 미소짓는 이씨의 얼굴에선 그늘이란 찾아볼 수도 없다. ""농성하는 사람들 모두가 호형호제하며 지내요. 식사도 거의 같이 해결하고요"" 서로에 대한 의지가 그의 미소를 만들어내는 듯 보인다.
단식농성 9일째를 맞고 있는 '철도노조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의 노동자들은 40일간의 철탑고공농성을 마치고 찾아온 동료 이종선(구로 차량지부장)씨를 맞아 뜨거운 포옹을 하고 있다. 이 씨는 ""그때 외쳤던 대통령 직선제도 됐는데 우리 (철도노조)는 5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직선제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민주주의 투쟁의 연장이라 생각하며 내 딸에게 정말 좋은 세상 남겨주기 위해 살고싶다""고 다짐한다.
""그 해는 유난히 더웠던 것 같다""며 87년 6월을 기억하는 박순희(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의장) 씨는 ""그때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고 국회와 정부요직으로 가서 '나도 옛날에 다해봤다'는 교만을 부리는데 질린다""며 ""안주하면서 기념하고 상기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입으론 말하면서 행동이 따라가지 않는 사람들을 보지 말고 실천하자""고 제안했다.
""힘들었어도 눈만 마주쳐도 동지애, 인간애를 느끼며 신바람이 났었다"", ""불의에 항거한다는 열정으로 한사람에게라도 더 전하려는 의욕이 있었다"". 87년 6월에 대한 기억은 이렇듯 명동성당 천막 농성장을 지키는 사람들을 깨어 움직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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