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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죽여놓고 웬 말이 많으냐', '그냥 살인으로 몰고 가기에는 문제가 있으니 선처를 바란다', '침해에 대한 정당한 방위를 했으니 벌하지 말아야 한다'
십 수년 동안 남편의 구타에 시달린 여성들이 남편을 살해한 사건들에 대해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놓여있는가? 한국여성의전화연합(공동대표 이문자)은 21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긴급토론회를 갖고 '선처에 대한 호소'를 넘어선 '정당방위와 면책'의 논리를 고민했다.
발제에 나선 한인섭 교수(서울대 법대)는 ""지금까지 법학의 논리는 가정을 평화의 장으로 보고 폭력이 좀 지나쳐도 참아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여기서의 '인내'란 일방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남편에 의한 아내 살해가 대부분 폭행치사로 단기실형 내지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온 것에 비해 아내에 의한 남편살해는 어느 순간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경에서 저질러졌음에도 대부분 살인죄가 적용되었고 '정당방위나 심신장애'를 인정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판례의 경우 '정당방위'를 인정하는데 인색하여 '막 폭력이 행해질 때의 방어만이 인정된다'는 '현재성의 요건'을 엄격히 해석하고 있다. 이를 남편살해 여성들에게 적용시켜 보면 공격받을 때는 대항할 힘이 없으니 정당한 방어를 할 수 없고, 공격을 받지 않을 때(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다가 쉬는 중에) 생긴 일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을 수 없는 결과가 나온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남편의 휴식을 '폭력을 위한 충전기'로 보고 정당방위의 요건에서 '현재'라는 말 자체가 눈앞에 급박한 것만이 아니라 '상시적 폭력성'의 의미로 해석돼야 한다 ▲ '그날 그 순간'만의 폭력을 '침해'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십 수년간 자행된 폭력을 감안하여 '누적적 침해' 차원에서 남편의 폭력을 재해석해야 한다 ▲ 남성의 방어능력을 기준 삼아 '방위'가 상당한 이유를 가졌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 '다른 행위의 선택 여지가 없었다'는 점을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현미 교수(이대 법대)는 ""기존 판례가 가정폭력피해자의 살인사례에서 정당방위를 너무 제한적으로 해석할 뿐 아니라 면책사유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인 남편의 폭력 속에 살아온 여성들이 대부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정신과적 질환에 걸린다고 하나 이를 근거로 한 면책부분의 검토는 등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는 23일(금)에도 12년간 남편의 폭행과 성학대를 받은 끝에 올해 4월 순간적으로 남편을 살해한 신모 씨의 결심공판이 있다. 이날 토론회의 참석자들은 이번 재판에서만큼은 선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당방위이며 무죄임을 인정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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