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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내내 신문과 TV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의약분업, 그리고 의사들의 폐업, 파업. 현장을 떠난 양심적 의사들을 고민하게 하고 아프고 괴로운 민중의 불안을 자아냈던 의사들의 파업, 폐업사태만큼 떠들썩한 '권리'의 상차림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의사들이 주장하는 '의권', '진료권'. 약사들이 주장하는 '약권', '조제권'. 언론과 시민단체, 심지어는 정부마저 입을 한데 모았던, 결코 담보 삼을 수 없는 '환자의 권리'.
이 짧은 글에서 이렇듯 상차려진 권리들이 터하였던 '의약분업' 제도의 잘잘못을 일일이 따지는 것은 줄이기로 하자. 그러나 과연 이 혼돈 속에서 과연 민중의 '건강권'이 각양각색의 권리들의 상차림 속에서 어떻게 빛이 바래고 있는지를 되새겨 보는 것은 필요하리라 본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지극히 민간자본에 의존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민간자본은 당연하게도 이윤의 논리를 좇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약값에 따르는 상거래의 마진을 누가 차지하느냐 라는 문제가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사와 약사의 싸움의 근본원인 중 하나다. 이미 약값 마진의 거품이 상당히 걷혀지기는 했으나 의사의 처방권 범위나 약사의 독자적 조제권 범위를 서로 넓히려는 시도는 이러한 이윤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이윤 동기에서 자유로운 공공의료가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취약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의료대란'에 직면하여 공공의료체계의 소중함을 깨우쳤다는 정부 당국자들의 얘기는 결과적으로 번지수를 제대로 찾기는 했으나, 문제의 근본원인에 비켜섰다는 점에서 오히려 부차적인 인식인 셈이다.
그러나 민간이든 공공이든 의료체계가 완비되어 있으면 무엇하나? 의약분업 제도가 제 아무리 완벽하다면 무엇하나? 이 모두가 민중이 아플 때 치료받기 위해 경제적 장벽을 넘어서고 없는 시간을 쪼개어 의료기관과 약국을 방문할 때, 비로소 제 나름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아파도 병원갈 수 없는 민중,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치료를 위해 대가를 치를 수 없는 민중이라면 이 모든 제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의권'도 좋고 '약권'도 좋고 '환자의 권리'도 좋지만, 아플 때 치료 받고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돈' 때문에 의료에 대한 접근권, 건강에 대한 권리가 제한되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것이 민중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보험료가 아니라, 노동자를 부리는 기업주의 재정 부담 확대, 국가가 앞장선 재정지원을 통해 의료보장 제도의 경제적 토대가 더욱 확고하게 구축되어야 하는 가장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최용준 (평등사회를위한 민중의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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