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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이 92주년을 맞이했다. 1908년 오늘, 인간다운 삶을 요구했던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외침은 아직도 달성되지 못한 과제로 남아있다. 여성이 '빈곤과 폭력'으로부터 해방되는 새로운 세기를 설계하기 위해 성취해야 할 인권의 과제가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21세기에는 여성성과 여성적 감수성이 대접받는 사회로 전환될 것'이라는 희망적 예측이 곧잘 신문 지상을 오르내린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 여성들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이러한 낙관적 전망이 단순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빈곤의 여성화'는 대다수 여성들이 여전히 시장의 폭력과 제도화된 차별 속에서 고통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현상.
지난해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절반 가량이 빈곤상태에 놓여 있다. 하루 소득이 1달러에도 못 미치는 15억에 달하는 절대빈곤 인구 가운데 70% 가량은 여성이 차지한다. 또 전체 성인 인구 가운데 문맹인구가 10억을 넘고, 이들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여성들이 사회적 자원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됨으로써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국사회 여성들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98년 여성노동자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60% 정도에 불과하다. 노인 단독가구 가운데 87%를 차지하는 여성노인의 대다수가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는 현실도 빈곤이 여성의 인권을 얼마나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징후들이다.
가속화되는 여성의 빈곤
더 큰 문제는 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빈곤의 세계화와 더불어 빈곤의 여성화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것. 이는 IMF체제 이후 지난 2년간 우리 사회가 경험한 바이기도 하다.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생계부양의 보조적 존재라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의 공세 아래 우선 해고의 대상이 되었다. 실직여성의 재취업율은 남성의 50%에 불과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여성화하는 경향도 여성의 빈곤문제를 더욱 증폭시킨다. 물론 이전에도 여성들은 노동시장과 가족 내에서의 성별분업으로 인해 4인 이하 영세사업장이나 계약직 시간제 등 주변부 노동시장에 집중돼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규직 여성노동자를 계약직으로 전환하거나 여성을 계약직 임시직으로만 신규 채용하는 현상이 급격히 증가해 왔다.
1월 현재 남성노동자의 42%가 비정규직인 데 반해, 여성노동자의 경우는 70%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고서도 정규직의 40~60%에 불과한 임금을 받는다. 각종 수당과 복지혜택에서도 배제될 수밖에 없는 현실까지 고려한다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부의 복지정책이 빈곤의 여성화 흐름을 역류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복지정책이 대개 '기여에 따른 분배'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소득 재분배효과를 거의 거두지 못할 뿐 아니라, 여성의 빈곤문제를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임금과 근속년 수가 높을수록 급여액이 높다. 낮은 임금과 높은 이직률을 특성으로 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당연히 낮은 급여를 받을 수밖에 없어 노후의 생계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지난해 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조금은 나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빈곤의 여성화를 낳는 제도화된 여성차별과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유지한 채 제시되는 사후정책은 모두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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