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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사람들과 밤새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어 이것저것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중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할 이야기가 많아서 두발규제나 체벌 등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던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이 ""학교로부터 탄압이 없었어?""였다.
내가 직접적으로 징계를 받은 기억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90년대 중반 '학생복지회'가 만들어졌을 무렵, 많은 선배들이 교장실에 불려가 탈퇴를 종용당했던 일도 있었고, '중고등학생연합'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부산, 광주 등에서 활동하던 친구들이 징계를 받는 일도 있었다.
이런 탄압이 부당한 것임은 틀림없지만 학교에서는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일단 자기네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입장이고, 교칙상으로도 근거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 학교의 교칙에는 이런 학교에 저항하는 활동을 규제할 만한 근거가 충분히 있다. ""학교장 허락 없이 외부활동 금지"" ""일체 정치활동 금지"" 등의 조항이 있어, 학교장 허락이 없는 어떠한 활동도 처벌이 가능하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최대 악법이라는 국가보안법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외부활동'이나 '정치활동'이, 대체 어떠한 뚜렷한 기준이 있다는 것인가?
따지자면, 학교의 '외부'인 집에서 학교 흉을 보는 일이나, 집에서 아버지와 조선일보를 가지고 토론하는 행위도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또한 기준이 애매 모호한 것을 떠나서 이런 조항 자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학교와 그 책임자인 정부는 청소년의 정치, 사상,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물론 내 경험상으로는 교칙에서 이런 조항 하나 하나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조항은 학생을 바라보는 학교의 어떤 관점에 기인한 것이다. 문제는 학교가 학생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최대한 효율적으로 통제를 해서 무사히 명문대학교에 보내는 것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만약 학교가 정말 학생들을 위한다거나, 나라를 위한다면 청소년들의 정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배려해줘서, 학생들을 높은 정치 수준을 가진 시민으로 양성하면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는 그렇게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학생들을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던 일제와 유신 독재 시절의 습관이 그대로 배여 있다.
얼마 전 6. 13 지방선거가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한 채 끝났다. 그 배경에는 기존의 기성정치에 실망한 국민의 정서가 깔려있겠지만, 적어도 청소년기부터 정치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나라에서 높은 투표율을 기대하는 건 좀 지나친 욕심인 것 같다. 뭐, 그걸 노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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