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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강제로 인한 사상의 변화, 전향! 전향의 역사가 50년 넘게 지속된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한국에서 전향은 대체로 좌익수들에게 행해졌다. 정권은 이들의 사상을 바꾸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자신의 사상을 지키다 끝내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허다했다. 도대체 '전향'이 뭐길래?
전향의 역사
변절, 굴복, 반성... 이런 표현들은 어감이 좋지 않고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다. 이를 간파한 1930년대 일제 사상검사들은 '전향'이란 말을 만들어, 사회주의자들이 천황제의 정통사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돕는다'. 이렇게 시작된 전향제도는 당시 한반도 독립운동을 포함한 모든 반체제 사상을 탄압하는 수단이 된다.
45년 일제 패망 후, 한국사회는 좌익을 극도로 혐오하는 미군정이 진주한다. 이때 친일세력은 반공세력이 되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자연히 좌익을 대상으로 전향제도도 그대로 온존한다. 한국전쟁을 거치고 56년 정권은 전향·비전향 좌익수들을 분리 수용하고, 비전향 좌익수들에게 서류로 전향을 증명하게 한다. '전향서'는 이때부터 제도화된다.
61년 반공을 제일 국시로 군사반란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은 비전향 좌익수들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 전향공작을 체계적으로 실시한다. 65년 중앙정보부의 감독 아래 '5단계 전향공작'의 뼈대가 완성되고, 73년에는 전향공작 전담반이 설치된다. 그리고 비전향 좌익수들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킬 수 있는 사회안전법이 75년 제정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전향은 제도적으로 완성된다.
전향의 규모
88년 비전향자로서 처음으로 출옥했던 서준식 씨가 쓴 「전향, 무엇이 문제인가 - 영광과 오욕의 날카로운 대치점」(역사비평 93년 가을호)에 따르면, 56년경 대전형무소에는 좌익수가 3천명 정도다. 이들 중 60년 4·19 직전까지 전향하지 않은 좌익수는 2백70명 정도라고 한다.
또 61년 군사반란 직후 정권은 전국의 비전향 좌익수를 대전교도소에 집결시키는데, 그 수는 8백명 가까이 된다. 하지만 72년엔 4백명 정도로 줄고, 전향공작 전담반에 의한 살인적인 전향공작이 진행된 73∼74년을 거치면서 약 2백명이 된다.
75년 사회안전법 시행으로, 전향하지 않은 좌익수뿐만 아니라 이미 만기출소한 비전향자들까지 청주보안감호소에 구금된다. 그 수는 1백56명 가량이며, 그 중 16명이 옥사한다. 89년 이 법이 폐지될 때까지 비전향 상태에서 출소한 수는 51명이다.
의문사위의 조사에 의하면, 73∼75년 광주교도소 9명, 대전교도소 4명, 73∼76년 대구교도소 5명, 73∼78년 전주교도소 2명 등 좌익수들은 전향공작 과정에서 사망했다. 그러니 고문으로 인한 피해의 규모는 가히 짐작이 간다.
전향의 실체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전향서를 쓰는 것이 좌익수들에겐 어떤 의미일까? 서준식 씨는 ""비록 국가권력의 폭력에 의해 굴복해서 본의 아니게 전향을 하더라도 전향자는 좌절감을 느낀다""라며, ""이는 무엇을 지킨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에 따라 전향자들은 운동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소극적이 되며, 나아가서 비굴해지거나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서씨는 또 ""그때그때 진보운동·통일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한발씩 물러선다는 것은 정권에겐 엄청난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정권은 '종이 한 장'을 못 없애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일반민중들에겐 옳은 것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에 대한 냉소가 생긴다""라며, ""이것이 정치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만만치 않다""라고 덧붙인다.
의문사위 현정덕 조사관은 ""강제적으로 (전향서를) 쓴 사람은 전향하지 않은 좌익수들로부터 서서히 분리된다""라며, 따라서 ""전향서 자체는 좌익수 내의 대오를 깨는 문제였다""라고 전직 중앙정보부 요원의 주장을 전한다. 전향서는 '종이 한 장'의 문제를 넘어, 고도의 정치적 공작 과정인 것이다.
전향의 문제
그렇다면 좌익수들을 전향시키는 것이 왜 문제인가? 지난 4월 '준법서약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 내용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김효종, 주선회 재판관은 판결문에서 ""양심의 자유는… 아무리 공익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간섭할 수 없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며, ""개인과 국가의 대치관계가 발생할 때… 개인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벽""이라고 판단한다.
또 ""원칙적으로 자유민주주의 헌법에 있어서 양심의 자유 혹은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체제를 선호하는 개인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보장되는 것""이라며,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있어도, 그들로 하여금 여하한 직·간접적인 강제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신념을 번복하게 하거나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게 대한민국 법의 준수의사를 강요하거나 고백시키게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비전향 좌익수들은) 우리 나라 민주화에 대단히 기여한 분들""이라며, ""사상의 자유라는 것이 민주화와 무관한 것이라면 몰라도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면, 그분들만큼 사상의 자유를 온몸으로 실천하신 분들은 없다""라고 주장한다.
한편, 현정덕 조사관은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모욕했다고 실형받은 사람들도 전향대상이었다""라며, ""이들 중 (정권이 전향을) 강압적으로 하니까 기분 나빠서 (전향을) 안한 사람도 있다""라고 밝힌다. 전향제도가 정권에 의해 자의적으로 악용·남용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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