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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은 인권하루소식 독자를 대상으로 올 한해동안 발생한 국내 인권사건(총 52문항)에 대해 설문작업를 벌여 '2000년 인권 10대뉴스'를 선정했습니다. 이번 설문에는 모두 1백6명의 독자가 응답해 주셨습니다.
인권하루소식 독자가 선정한 2000 인권 10대뉴스
매향리 폭격장 폐쇄투쟁(77.3%)
2000년 5월 8일. 미 공군 전폭기의 오폭으로 매향리 주민 6명이 부상을 입고 농가가 피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반세기에 걸친 매향리의 비극이 우리 사회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52년 미군 전용사격장이 들어선 이래 오폭사고로 사망한 주민만도 10명. 임산부의 잦은 유산을 물론이고 폭격 굉음으로 인한 자살. 죽어버린 갯벌과 중금속으로 오염된 통곡의 땅 매향리.
이후 매향리 폭격장 폐쇄를 위한 투쟁은 들불처럼 번졌다. 마을에서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고, 종교인사 등이 폭격중단을 요구하며 사격장을 점거했다. 또 각계인사 2백여 명은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한미합동조사단이 ""폭탄투하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없다""고 밝혔을 때엔, 분노한 매향리 주민 3백여 명이 화성군청에 주민등록증을 반납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잇따른 항의행동 과정에서 전만규 주민대책위원장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구속되자, 국제 평화운동가들은 한국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절망을 딛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선 매향리 주민들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KNCC 인권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반년 여에 걸친 강고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매향리폭격장은 폐쇄되지 않았다. 오히려 ""매향리는 소수의 문제""라는 문일섭 국방차관의 망언에서 엿보이듯 정부는 문제해결의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56.6%)
한국군이 베트남전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미국측 보고서가 11월 14일 공개됐다.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이 새 국면을 맞는 순간이었다.
99년 10월 '한겨레21'에 의해 공론화되기 시작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작업'은 올 1월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의 출범과 함께 본격적인 캠페인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참전 용사의 명예를 짓밟고 국익을 해치는 짓""이라는 반발도 일었고, 6월 29일 '고엽제 전우회'의 한겨레신문사 난입사건, 10월 13일 참전용사들의 방해로 인한 학술심포지엄 무산사건 등 진실규명을 위한 장도는 험난했다. 정부 역시 ""베트남 정부도 덮어두는 데…""라며 이 문제에서 발을 빼기에 바빴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운동은 학살된 베트남 민간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일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상처 치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보고서'의 공개를 통해 학살의 존재가 확인된 만큼, 우리 정부 역시 관련 문서의 공개를 비롯한 진상규명작업과 정부 차원의 사과와 보상에 기꺼이 나서야 할 때다.
비전향장기수 63명 북송(55.6%)
2000년 6월 13일, 분단 이후 55년만에 최초로 남북정상이 만났다.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발표. 이어 9월 2일 비전향장기수 63명이 북녁땅으로 돌아갔다.
비전향장기수의 북송은 인도적 견지에서 뿐 아니라, 분단상처의 치유와 남북 화해의 차원에서 수년 전부터 요청됐던 문제다. 특히 93년 리인모 씨의 송환 이후, 전쟁포로 출신인 김인서 씨 등도 북송을 요구하면서 문제제기는 본격화됐다. 비전향장기수 대부분이 전쟁포로에 해당하는 데다, 가족과 거소지가 북쪽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분단의 희생양인 이들의 송환을 통해 남북화해와 통일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은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발에 불과하다. 이른바 '전향장기수' 송환 문제를 비롯한 여러 과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전향장기수 북송과 함께 '북파공작원' 문제가 전면에 제기됐다. 11월 들어서는 북파공작원 출신들이 직접 ""실체 인정""을 요구하며 추모행사와 집회를 갖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는 여전히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롯데호텔·사회보험 파업 무력진압(51.8%)
6월 29일 새벽, 경찰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적정인력 확보를 요구하는 호텔롯데 노조원들의 파업농성을 진압했다. 이어 7월 1일 사회보험노조의 농성을 같은 방식으로 진압했다. 대테러부대인 솔개부대까지 앞세운 전광석화 같은 '작전'이었다. 경찰은 장애인, 여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의사들의 폐업에 전전긍긍하던 정부는 호텔롯데와 사회보험노조의 파업을 '불법과 폭력으로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며 경찰봉과 섬광탄으로 응수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만 버티면 경찰이 물러갈 줄 알았다""는 호텔롯데 여성노조원의 '순진한' 생각도 무참히 깨졌다.
김대중 정부는 호텔롯데와 사회보험노조 파업에 대한 무력진압을 통해 하반기 구조조정을 '기필코'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와 함께. 이후 정부는 2차 퇴출 결정과 한전민영화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조조정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한편, 호텔롯데 노조는 강제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파업대오를 굳건히 유지해 부족하나마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길을 열었고, 여성노동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성희롱 문제를 공론화 시키는데 기여했다. 노동자들이 얻은 또 하나의 성과는 치떨리는 진압의 경험 속에서 노동계급에 적대적인 김대중 정권의 본질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는 점이다.
오만방자 주한미군…소파 투쟁 확산(39.6%)
올 한해 주한미군이 저지른 범죄와 인권침해 행각은 쉴새없이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1월 5일 미군은 파주미군기지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첩보를 접하자, 미군 군인과 군속, 장비들만 따로 대피시킨 뒤 7시간 후에야 그 사실을 한국군에 통보했다. 한국주민의 안전은 아랑곳 않은 채.
이어 군산 미공군비행장의 오·폐수 무단방류 등, 미군의 환경범죄 행각이 잇따라 폭로되었다. 그 절정은 7월 13일 녹색연합에 의해 폭로된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 용산 미군부대는 시체방부처리용 약품 포름알데히드가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물질임을 알고도 이를 한강에 무단방류했던 것이다. 미군은 사건이 발각된 후에도 오만한 자세로 사과조차 미루는가 하면, 무단방류 지시자에게 고작 45일 감봉처분만을 내림으로써 우리 국민을 조롱했다. 노근리 학살사건에 대해서도 미국은 여전히 '우발적 사건' 운운하며, 사과와 피해보상을 거부하는 오만한 자세로 일관했다.
일련의 미군범죄에 분노하면서 각계 민중들은 불평등한 소파(한미행정협정)의 개정을 요구하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으며, 국내 사회단체 인사들은 미국 워싱턴까지 달려가 소파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했다. 한미 양국 정부는 12월 들어 소파개정 협상을 재개했지만, 결국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또 다시 문제해결을 미루고 말았다.
'사람'대접 못 받는 이주노동자(39.6%)
가장 밑바닥, 3D업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국내 비정규직의 최하층을 형성하고 있는 존재다. 국내 체류중인 25만 이주노동자 중 60% 이상이 미등록노동자로,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힌 채 강제추방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다.
특히 올 4월 네팔인 이주노동자 찬드라 씨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위치를 극적으로 드러냈다.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행려병자로 몰려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된 그가 무려 6년만에 풀려났던 것이다. 또 몽골인 자르갈 씨는 5월 절도혐의로 연행돼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이 쏜 총에 턱을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10월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인도네시아인 이라완 씨는 파출소 지하실에서 가혹수사를 당했으며, 스리랑카 출신의 한 부부는 가평의 농장에서 퇴사도 못한 채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정부와 여당은 이주노동자 인권탄압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이 또한 이주노동자의 인권보장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더라도,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선택의 자유는 주어지지 않으며, 노동3권 역시 형식적으로만 보장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땅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날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동성애 이유로 쫓겨난 홍석천씨(38.6%)
지난 9월 말 한 월간 여성지와 스포츠신문은 탤런트 홍석천씨를 '동성애자'라고 폭로했다. 동성애 사실을 사적으로 시인한 홍 씨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으나 그는 곧 그 사실을 인정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연예인이 커밍아웃한 사건이었다.
그가 커밍아웃하자 MBC와 KBS 제2라디오는 홍 씨에게 출연중지를 통보했다. 이유는 ""사회전체가 합의한 상식선에서 동성애의 방송출연은 곤란하다""는 것. 그러나 상식선은 잘못 그어놓은 차별의 선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회단체·법조·여성·문화·언론·정계 인사들로 구성된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이 결성됐다. 이들은 ""동성애자 문제는 사회적인 억압구조와 맞물려 있다""고 밝히며 성적소수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캠페인에 나섰다.
온라인에서도 큰 이슈가 된 홍석천 지지운동은 현재까지 수천 명의 네티즌이 참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동성애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지만 홍 씨의 커밍아웃은 동성애자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을 '훔쳐보기'에서 '소수자의 인권문제'로 방향을 전환시킨 사건이었다.
한편 이종걸 의원은 '동성애자에 대한 정책지원 방향'등에 관한 질의를 위해 홍씨를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신청하려 했으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를 거부했다. ""국회의 품위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33.9%)
10월 19-20일, 3차 아셈회의가 서울에서 열리자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민중행동이 잇따랐다. '자유화와 시장개방'을 골자로 하는 아셈의 핵심의제는 자본의 요구대로 주무를 수 있는 유연한 노동시장과 공공영역의 해체로 귀결된다. IMF난국을 경험한 우리 민중들로선 더 이상 생존권 후퇴를 좌시할 수 없었고, 정상회의가 열리는 20일 오전 서울 양재동 뱅뱅사거리를 일대에서 1만명의 노동자, 학생들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오후 올림픽공원에서는 민간단체포럼과 '투자협정 WTO반대 국민행동', 민중행동위원회가 공동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번 시위가 시애틀, 프라하로 이어져온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열기를 확인하기엔 미흡했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한국민중의 경고를 가장 대중적으로 드러낸 현장이었다.
한편 정부는 3만에 이르는 경찰을 동원하고 핼기와 장갑차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 시위 전력이 있는 외국인의 입국도 불허하는 등 강경 대처로 일관했다. 아셈반대 시위에 대한 경찰의 폭력행위도 잇따랐다.
과거청산 첫 발, 전도는 미지수(33%)
4백22일 간에 걸친 유가족들의 농성 끝에 제정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두 법 모두 제정과정에서 취지가 많이 훼손돼, '시행령' 만이라도 올바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고, 이를 위해 유가족들이 다시 거리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민간의 요구가 일정하게 수용된 시행령이 7월 통과되면서 비로소 두 법은 시행에 들어갔다.
정부는 9월부터 민주화운동 보상신청 접수를 시작해 1차로 8천9백여 명의 신청서를 접수했으며,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1월, 5건의 의문사 사건을 접수했다. 1차로 접수된 의문사 사건은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사한 최종길(당시 서울대 교수)씨 사건 등으로, 향후 의문사진상규명작업의 성패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한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는 민간과 정부측에서 각각 추천된 조사관들이 참여함으로써, 민관이 공동으로 사건진상규명에 나서는 전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조사기간과 조사권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국가정보원 등 관련 국가기관의 '딴지'를 극복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의사폐업 사태…국민건강권 침해(32%)
의약분업 실시에 반발해 6월 20일부터 시작된 의사들의 폐업사태로 온 국민이 홍역을 치렀다. '의약분업의 왜곡' 등이 폐업의 표면적 이유였지만, 속사정은 '옛날만큼의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의 폐업사태는 11월 11일 정부와 의약계가 '약사법 개정안'에 합의할 때까지 지속됐다. 결국 의사들의 폐업으로 인해 치료를 거부당하는 환자가 속출하는 등,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져야 했다. 심지어 정부는 의사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의보수가를 인상한 뒤, 그 손실분을 의료보험료 인상을 통해 해결하기로 해, 국민들의 부담만 가중되는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당초 의료공공성의 확대를 의미했던 의약분업의 취지는 퇴색하고, 국민건강권의 침해와 보험료 인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한 의료정책이었다.
올해의 인권지킴이
1위. 매향리 주민대책위
어려운 조건에서도 미군과 한국정부를 상대로 끈질긴 생존권 투쟁을 전개해 미국의 인권침해 실상을 공론화하고, 불평등한 한미관계와 소파의 문제점을 부각시켜냈다. 전만규 주민대책위원장, 문정현 신부, 이름없는 시위대 등 매향리 투쟁 관련자들도 동시에 거론됐다.
2위. 베트남 진실규명운동 관계자
베트남 양민학살 문제를 최초로 보도한 <한겨레21>의 구수정 통신원과 베트남 진실위원회 활동을 이끈 국제민주연대가 인권지킴이로 꼽혔다.
3위. 홍석천씨와 동성애자인권연대
홍석천 씨는 특히 '아웃팅'을 당하고도 '추문수습'이 아닌 '인권의 관점'을 명확히 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4위. 전국중고등학생연합
두발규제를 철폐시키면서, 당당하게 자신들의 권리 주장하고 행동한 점이 평가됐다.
올해의 인권침해자
1위. 주한미군과 미국정부
한강독극물 방류사건과 매향리폭격훈련 등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이, 주한미군은 올해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인권침해자로 꼽혔다.
2위. 정형근
예년에 비해 '특출한 활동'이 미미했던 점에서 보면 다소 의외의 결과다. 그만큼 정 씨는 대표적인 반인권 인물로서 사람들 속에 각인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정 씨가 인권가해자로 지목된 이유로는 △고문 가해자임에도 국회의원에 도전한 사실 △무책임한 폭로로 정치혐오증 유발한 것 등이 지적됐다.
공동 3위. 이무영 경찰청장·김용갑·의사단체
이무영 경찰청장은 롯데호텔 파업 무력진압 등을 이유로, 김용갑 씨는 '노동당 2중대' 발언 등 수구세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의협과 의쟁투를 비롯한 의사단체는 집단폐업 사태를 통해 국민건강권을 침해한 이유로 인권가해자로 지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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