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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사람들이 왜 여기 와 있어? 우리 일 해결되기 전엔 나 눈 못 감으니까, 나 꼭 일어나 갈테니까 어서들 돌아가, 어서.”
27일 기나긴 투쟁과정 도중 지병으로 사망한 육경원(현대중기 퇴출 노동자 52) 씨가 면회 온 동료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육경원 씨는 1979년 현대중기건설에 입사한 이래 국내외 건설현장 등에서 반평생을 건설 노동자로 살아 온 사람이었다. 96년 암 선고를 받기는 했지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98년 현대중기가 퇴출기업으로 지정되면서 그도 동료들과 함께 일자리에서 일방적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재발이라도 하면 어쩌냐”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혼자 편할 수는 없다”며 투쟁의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그렇게 투쟁에 참여한 지 반년, 과도한 스트레스로 암은 재발됐고, 27일 “억울해서 이렇게는 눈을 감을 수 없다”는 한 마디를 남긴 채 그는 동료들 곁을 떠났다. 퇴출된지 2백4일만의 일이었다.
“항상 대열 맨 앞에 서있던 사람”으로 육 씨를 기억하는 건설노련 부위원장 유기선 씨는 “퇴출노동자의 한을 품고 갔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20년간 동고동락했다는 임길상 씨 역시 “지난 반평생 현대가 잘되면 우리도 잘되는 거라 믿고 죽도록 고생만 했다. 그토록 가고 싶던 현장에 아직 못 갔는데 죽었다”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그를 잃고도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현대중기 퇴출노동자들은 7개월 가까운 농성 때문에 건강이 심하게 악화된 상태다. 퇴출노동자 가운데 박종안 씨는 직장암을 앓고 있고, 문종범 씨는 당뇨로 투병 중이다. 또한 모두가 절박한 생계문제에 직면해 있다보니 가족 내 불화도 피해갈 수 없다.
“필요하다면 현대 본사 앞에 남편의 시신을 놓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싸우고 싶다”는 육 씨 부인의 뜻처럼 현대중기 퇴출노동자들은 “고용승계를 쟁취하는 날까지 싸우겠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육 씨의 빈소는 서울대 영안실에 마련돼 있으며, 장례는 오는 29일 오전 6시 영결식에 이어 현대 본사 앞 노제를 지내게 된다. 장지는 전남 화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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