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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과 복종, 억압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갔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엄이 무시되고 인간이 도구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이 모든 과오가 밝혀져야 합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김훈 중위 사망 1주년을 기념해 24일 서울 삼각지 성당에서 연 ‘군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젊은이들을 위한 추모미사’는 유가족과 관계자 1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해인 신부의 강론으로 시작됐다.
“억울한 죽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하소서. 자신의 안위와 출세를 위해 사람(군 관계자)들이 말하지 않게 하소서.” 강론이 끝나기도 전에 성당 안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자식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의 눈물이었다. 억울한 죽음에 대해 한마디 사과도 없는 정부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에 대한 흐느낌이었다.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겼을까, 20여 개가 넘는 젊은 청년들의 영정이 성당 안을 채웠다. 그중에는 변변한 사진조차 없어 간단히 약력만 써 있는 영전도 있었다. 미사를 마치고 자식의 영전 앞에 국화를 봉헌하던 어머니들은 “불쌍해서 어떡해, 내 자식 불쌍해서 어떡해”라며 오열을 터트리다 결국 영정 앞에 주저앉아 버렸다.
곧 이어 노래패 ‘꽃다지’가 억울한 청춘의 넋을 기리는 추모시를 낭독했다. “이제는 영원히 산 사람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이여….” 그랬다. 이제 그들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가족들의 가슴속에 영영 잊혀질 수 없는 한으로 남은 것이다.
“아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던 때, 고통스럽게 ‘나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어머니, 나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데’하고 아들이 소리를 쳤을 그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합니다. 그것이 나의 책임이고 내가 해야할 일입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전국 군 폭력 희생자 유가족 협회’ 회장인 고 박현우 상병의 어머니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장내는 다시 한번 울음바다로 변했다.
모든 행사가 끝나자 어머니들은 아들의 영전을 품에 안고 국방부로 향했다. 난데없는 소복행렬에 길을 지나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췄고, 이내 그들의 절규가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국민의 정부에 의문사가 웬 말이냐”는 유가족들의 절규. 하지만 굳게 닫힌 국방부 철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고, 유가족들이 돌아서는 그 순간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비록 오늘 유가족들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서야 했지만 “아들의 명예회복을 이루는 그날까지” 어머니들은 국방부 철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내 아들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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