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특별기고> 국보법의 완전철폐가 아니고는 만족할 수 없다
내용
"지난 금요일 아침에 신문을 펼쳤을 때, “국보법 대폭 개정”이란 1면 기사가 눈에 크게 보였다. 오랫동안 국보법 철폐를 부르짖어 온 나에게는 오래간만에 보는 중대 뉴스가 아닐 수 없어 ‘숨쉴 새도 없이’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 

그러나 읽어내려 가면서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폭 개정”이란 제목부터가 벌써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런데 기사를 읽어보니 ‘대폭’도 아니었다. 

국정보고회의라는 자리에서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에게 했다는 이 보고에서 장관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현행 국보법이 대북 정책을 제약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고치는 것이 좋다는 것과 “막연히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안보를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쪽으로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겠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김창석 기자(한겨레)는 같은 날짜에 “전면 개정하거나 대체 입법할 듯”이라는 제하에 “박상천 법무장관이 25일 국보법과 관련해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의 개폐방향에 가닥이 잡히고 있다”고 매우 긍정적으로 해설기사를 썼다. 매우 어처구니없다. 그리고 같은 글에서 김 기자는 “박 장관은 ‘부분개정’과 ‘전면폐지’에 일단 부정적이고” “‘전면개정’이나 ‘대체입법’에 힘을 실었다”고 전했다. 


비폭력을 왜 처벌하는가?

박 장관은 국가보안법을 완전히 폐지하는 경우 “직접 폭력에 나설 것을 호소하지 않는 한 체제전복을 위한 선전선동을 처벌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하면서 완전폐지를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민주질서’ 운운하면서 도대체 ‘비폭력적인 표현활동’을 어떻게, 왜 처벌하겠다는 것인가? 도대체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사상과 표현의 자유, 양심과 신앙의 자유 등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질서인데 정권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단순히 정권과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그것을 반민주니, 국가 또는 체제 전복을 위한 선전이니 하여 법으로 처벌하겠다는 말인가?


‘반민주주의자’ 누명 의도

또 그는 대체입법을 하든 전면개정을 하든 국보법의 가장 독소조항으로 손꼽혀 오던 7조의 고무찬양과 이적단체 구성 등에 관한 조항을 표현만 바꿀 뿐 사실상 존치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니까 ‘우리안보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표현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로써 정부비판세력을 종전과 같이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 소속원으로 처벌하지는 않겠지만, 반민주주의자로 누명을 덮어씌워 처벌하겠다는 의도를 여전히 가지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이러한 작태는 국민의 정부에게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국가보안법 대신에 “민주질서보호법”으로 대체입법을 말한 것은 89년에 평민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거기에도 보면 “국가의 안전을 위해하는 행위”를 처벌한다고 하였는데 이 표현 역시 애매모호하고 고도로 추상적이며 얼마든지 오용될 소지가 있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또 “대한민국의 국가적 존립을 부인할 것을 선전하거나…”라고 하여 행위가 없더라도 사상의 표현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번에 박 법무부장관이 한 말도 이와 꼭 같이 단순히 선전하는 것도 처벌한다는 것이다. 


반민주적 ‘민주질서보호법’

국가보안법이 그 동안 정권수호를 위해 반대 내지 비판세력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온 것과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어 온 역사를 볼 때 이것이 어떤 형태로든 존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사실은 ‘민주질서보호법’이라는 그 법 자체가 민주질서를 파괴하는 반민주적 법이 될 뿐이다. 민주주의란 그것을 보호하는 법을 따로 수반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 민주주의란 그것을 비판하는 세력에 대하여도 그것이 비폭력인 이상 관용하고 존중하며 다만 형법에 헌법질서와 합법 정부에 대하여 그 전복행위나 반란행위를 금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보안법이란 이름도 거부할 뿐 아니라 그것이 일부 개정이나 전면개정 뿐만 아니라 어떠한 대체입법도 반대한다. 우리는 국보법의 완전 철폐가 아니고는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그것만이 우리 사회에서 인권시비를 막을 수 있고 또 국제사회에서도 우리 나라를 인권국, 문명국, 높은 도덕적인 선진국으로 인정받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홍근수 목사(민권공대위 공동상임대표, 전국연합 공동의장)"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03164
생산일자 1999-03-29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홍근수
유형 도서간행물
형태 정기간행물
분류1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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