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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아래 의문사위)가 80년도 ‘불량배 소탕’이란 명목으로 시행됐던 삼청교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와 피해자 명예회복 및 배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권고키로 결정했다. 의문사위는 1일 삼청교육대 실태와 관련 조사 확인한 내용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삼청계획 5호 “불량배를 소탕하라”
의문사위에 따르면, 80년 7월 30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아래 국보위)가 ‘불량배 소탕’ 명목으로 입안한 삼청계획 5호에 따라 군과 경찰은 8월 1일부터 합동작전을 벌여 (이듬해 1월까지) 총 6만7백55명을 검거했다. 같은 달 4일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이희성 명의로 ‘계엄포고령 제13호’가 사후발동돼 ‘일제소탕검거’를 정당화했다. 의문사위는 “당시 소탕대상은 ‘개전의 정 없이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 등 모호했다”라며, 심지어 공무원의 비리를 진정한 사람이나 폐수가 쌓이는 것에 대해 항의한 사람까지 검거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검거된 사람 중 3만9천7백42명이 25개 군 부대에 수용돼 ‘순화교육’을 받았고, 이 중 7천5백78명은 80년 12월 제정된 사회보호법에 따라 보호감호처분을 받고 이후 계속 군부대에 수용됐다. 의문사위는 “당시 삼청교육생들은 재판도 없이 법무부 사회보호위원회 심사에 따라 보호감호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의문사위가 공개한 ‘전국검사장 회의 기록’에 따르면, 80년 8월 19일 전국검사장회의에서 삼청계획 5호의 지속성을 위해 보호관찰제도 도입을 건의했고, 이후 삼청교육생의 보호감호처분이 추진됐다. 즉,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사회보호법은 삼청교육생들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때 처음 입안된 것.
또한 의문사위는 “경찰청은 최소 1989년까지 삼청교육대 관련자를 체계적으로 전산관리했”고 “과거 내무부도 이들을 사후관리했음이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고 밝혔다.
감호처분 항의, 전정배씨 총살
이날 의문사위는 삼청교육 중 사망한 전정배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도 발표했다. 전 씨의 경우 81년 6월 20일 육군 5사단 내 삼청교육대 감호분소에서 정식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사회보호법에 의한 감호처분에 항의시위를 벌이다 경계병이 쏜 총에 오른쪽 허벅지를 맞고 사망했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는 “삼청계획 5호와 계엄포고령 13호는 (신군부의) 폭동행위를 유지 강화시키기 위한 내란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라며, “전 씨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해당하는 근로봉사를 한 것, 감호생 집단시위 중 발포로 사망한 것 또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인정했다.
한편, 의문사위는 “삼청교육 과정의 전체 사망자 및 부상자 숫자, 희생자 인적 사항 등은 시한이 모자라 자체적으로 조사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82년 3월 발간된 육군본부 계엄사 기록은 사망자 50명, 부상자 18명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피해자들의 증언에 비춰볼 때 그 숫자는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의문사위의 현정덕 조사관은 “관련부처 등의 자료협조 거부 등으로 삼청교육 실행 과정에서 각 부처들이 담당한 역할 등에 대한 조사도 미진하다”고 밝혔다.
책임규명 피해배상 권고
이에 의문사위는 △삼청계획 5호 입안 결정 및 실행과정에 대한 책임규명 △삼청교육대 시행의 전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정부에 권고했다. 이 조사에는 삼청검거대상자 선정, 검거과정, 심사, 군부대 교육내용, 삼청교육 실태, 보호감호 처분 경위 및 근거, 출소 후 삼청대상자 관리실태와 피해상황 등이 포함돼야 한다. 또한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이었던 전두환 전대통령과 계엄사령관 등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다.
또한 의문사위는 “88년 노태우 대통령이 삼청교육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계획을 밝히고도 이후 특별법 제정 등 후속조치를 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하고 삼청교육대 피해자 명예회복 및 배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상 방식과 관련, 김준곤 상임위원은 “피해 접수를 신고한 피해자에게만 (배상)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보유한 자료를 근거로 모든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라며, “또한 정부는 당시 위법한 행위를 저지른 책임자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그들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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