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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군 의문사 관련 군 헌병대의 수사가 진술 및 증거 조작, 미비한 현장조사 등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아래 의문사위)가 접수된 25건의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 헌병 관계자와 관련 참고인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것이다.
의문사위는 9일 낮 1시 기자브리핑을 열어 80년대 군 의문사 사건에서 드러난 군 수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의문사위는 가혹행위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사망의 이유를 개인적 비관 자살로 단정지었던 점을 우선적인 문제로 꼽았다. 의문사위에 따르면, 84년 11월 육군 제5군단에서 사망한 임용준 사건의 경우, 고참병들에게 상습적으로 심한 구타를 당했다고 여러 부대원들이 진술하고 있으나, 군 헌병대는 불우한 가정환경 비관으로 자살한 것으로 종결했다. 또 이이동(육군 제9탄약창, 87년 9월 사망) 역시 평소 고참병들에게 구타를 수차례 당했고 사망 1~2일 전에도 고참병에게 심하게 맞은 사실이 위원회 조사에서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 군 헌병대는 이이동 사건과 관련 구타는 전혀 없었고 가정문제 비관으로 자살했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또한 군 헌병대의 묵인 하에 사건 경위를 은폐하거나 조작하는 일도 있었다. 이승삼 사건(육군 제36사단, 87년 3월)의 경우, 1차 수사를 담당했던 36사단 헌병대 수사관은 이 씨가 고참병들에게 구타당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당시 헌병대장의 지시에 따라 이를 은폐했다고 진술했다. 또 이창돈(육군 제17사단, 83년 5월)은 혼자 근무교대해 아무도 없던 행정반에서 총기 사망한 것으로 의문사위 조사결과 밝혀졌으나, 당시 헌병대는 이창돈이 정상적으로 근무교대하고 행정반에서 주번사관에게 신고한 후 사망한 것으로 조작했다.
의문사위는 군 수사기관이 현장에 남겨진 물품 등을 경시하거나 증거를 훼손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최우혁 사건(육군 제20사단, 87년 9월) 수사과정에서, 헌병대 수사관들은 현장에 있던 기름통, 라이터 등에 대해 지문 채취를 하지 않아 증거로서의 가치를 잃게 했다. 또 박상구 사건(육군 제7탄약창, 87년 5월)의 경우, 사건 현장에 박상구가 구토한 흔적이 있었음에도 헌병대는 구토물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고 현장을 청소해 버렸다.
의문사위의 김준곤 상임위원은 ""최근 발생한 군 의문사 관련 유가족들의 증언들을 들어보면, 지금도 군대 내 의문사 수사 과정에서 유사한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은 ""사단장 아래 소속된 군 검찰과 헌병대가 같은 사단 내에서 발생한 사건을 조사하고 있어 수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라며 군 수사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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