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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인권 보호와 보장의 의무를 띤 자들이 제 욕심 따라 연일 이삿짐을 싸느냐 푸느냐에 몰두하고 있는 때, 그들의 싸늘한 등짝 뒤에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짐을 꾸리고 있다. 의문사위의 조사권한강화와 활동지속을 위한 특별법이 정치권의 직무유기 속에서 녹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2년여의 진상규명 활동을 결산하면서 15일 위원회는 '대국민보고회'를 열고 51개항의 권고사항을 간절히 내밀었다. 권고의 핵심은 '기억의 의무'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이며, 그 바탕은 두말할 것 없이 '철저한 진상 규명'이다.
국가 권력이 파괴한 개인의 생명과 존엄성에 관하여, 즉 국가가 저지른 범죄의 구체적 내용과 그 피해자의 희생에 대한 사실을 명확히 기록하고 국가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국가의 '기억할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희생자와 그 가족의 피해에 대한 '인정'을 교과서 수록, 기념사업, 피해자 보상, 인권교육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함으로써 광범위한 시민이 집단적인 기억의 보존에 함께 할 수 있다.
또한 불행한 과거와 현재의 대면은 유사한 인권침해행위의 재발을 억제할 수 있는 법 제도 및 관행의 개혁을 통해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중대한 인권침해 범죄에 대해 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입법, 영장실질심사제 확대 사회보호감호제 폐지 군 사망사건 전담 조사위원회의 상설화 등 군 경찰 교도소 등에 의한 인권침해 소지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장치의 강화와 신설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철저한 진상규명' 없인 꿈꾸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정부수립 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벌어진 국가범죄와 인권유린을 '종이손'을 가진 위원회의 2년여 활동으로 마감하려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지금 진상규명 노력을 포기한다면, '기억의 의무'가 아닌 '망각의 광란'을, '재발방지조치'가 아닌 '권력기관의 면죄부와 재범'을 부추기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위원회가 권고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진상규명을 위한 기구'는 의문사법 개정을 통해 '지금' 이뤄져야만 한다. 겨우 줄기를 잡은 진상규명 노력을 청산과 망각으로 파묻으려는 정치권의 뻔뻔한 얼굴에 뜨거운 물을 끼얹고 싶다. 정치권이여, 당신들의 직무유기가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재살인임을, 무덤 위에 또 무덤을 만드는 행위임을 잊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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