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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인 용서일 수 있나?
김대중 대통령이 13일 경북도 행정개혁 보고회의 참석을 위해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관계자 40여명과 만찬을 함께 하며 ꡒ박대통령기념관 건립을 비롯한 기념사업추진을 위해 민간의 기부금 모금을 허용하고, 재정을 지원하는 등 정부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신정권의 최대의 피해자라고 주장되는 사람의 하나인 김대중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박정희를 용서하는 것은 성직자의 설교에서나 들을 수 있는 놀라운 일이고 그런 측면에서는 대단히 감동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는 매우 혼란스럽고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 씨는 현직 대통령이다. 개인적인 차원과 공적인 차원에서의 언동이 가지는 의미를 혼동하여서는 안될 것이며, 그가 이를 혼동하였을 리도 없다.
그가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내년 총선에서 확실한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그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이라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 문제를 푸는 것이 지역감정의 해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 역사와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잘못으로 기록될 것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하여는 이를 평가하는 사회가 그 사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와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는 비록 죽었지만 우리에게 기념해야 할 대상으로 역사 속에 남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아직도 현실 속에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존재이다.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박정희의 철학과 인간관을 따르며 이를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집단의 형태로 박정희는 존재한다.
그 집단은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무시무시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사회는 그가 행한 인권탄압의 잔재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적 원칙을 무시한 독재정치,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해졌던 각종 고문과 언론 출판의 자유등 각종 기본권에 대한 탄압, 지역감정의 조장, 천박한 자본 만능주의 등의 악습은 지금도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온존하여 있다.
박정희는 5공을 통해, 6공을 통해 계속 살아왔으며 우리 사회가 불완전하나마 청산의 역사를 이야기 시작하는 지금도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살아있는 불의의 세력에 면죄부
박정희 유신정권의 또 다른 이름인 5,6공은 불완전하나마 현실의 법정에서 평가를 받았지만 박정희와 그 시대의 부정의는 현실 속에서 평가되고 부정적인 측면이 청산된 적이 없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는 5,6공에 견주어 볼 때 그 폭력성이나 반민주성 그리고 반인권성에 있어 결코 뒤지지 아니한다.
박정희 시대에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사건은 지금까지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상당수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박정희가 법을 무기로 각종 인권탄압법률을 제정하여 한쪽은 그 법률의 노예로, 한쪽은 항거자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고통을 주고 법을 불신하게 만든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박정희야말로 김대중대통령의 발목을 대통령이 된 후에도 꽉 잡고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는 지역감정의 조장자이다. 이러한 박정희의 불의와 인권탄압에 대하여는 단 한번도 사법적 평가 또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직시된 바가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이후의 아무런 원칙도 정한 바 없이 박정희와 화해를 청하는 것은 아직 우리가 청산하지 못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 시대의 불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며 박정희와 더불어 인권탄압을 행하였던, 현재에도 살아 있는 불의의 세력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시대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고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그 긍정적인 측면이라는 것 하나하나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굳이 그러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끼리 그 장을 만들도록 내버려두면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돈이 없어서 이를 하지 못하였겠는가. 역사와 국민의 심판이 엄중함을 알기 때문에 이를 엄두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며, 박정희의 공을 이야기하면 반드시 그 인권탄압의 진상을 밝히자는 논의가 함께 있게 됨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정부가 먼저 나서서 정부의 이름으로 긍정적 측면을 이야기하자고 앞선다면 진실은 감추어지고 일방적으로 과장되고 미화된 박정희의 모습만이 언급될 것이다. 반드시 그에게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하여는 부정적 측면에 대한 공식적 판단이 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그가 저지른 더 큰 불의와 인권탄압에 대하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인권 침해역사관부터 세워야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개인적인 차원이나 정략적 목적에서 박정희와의 어설픈 화해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역사 발전과 인권존중의 시대를 열기 위한 차원에서 박정희 시대를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기념관의 설립에 앞서서 할 일이 있다.
정부는 박정희 시대와 그 뒤를 이은 군부독재시대에 정권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던 각종 인권탄압행위와 관련된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조사하여야 한다. 이를 토대로 마치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 시대를 반성하는 것처럼 인권탄압의 역사가 우리 나라에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담은 인권침해역사관 내지 박물관을 설립하여야 한다.
정연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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