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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 제도를 비판하는 주장에 한결같이 등장하는 것은 '인권침해' 시비이다. 하지만 이에 시민들은 납득하기 어려워한다.
범죄나 사고 발생시 신속한 신분확인이 효과적일테니 지문을 찍어두는 게 뭐 그리 나쁠 것 있냐고 여길 수 있다. 또한 은행에 가건 취직을 하건 꼭 챙기는 필수품인지라 '주민등록증 없는 생활'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굳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인권 운운하여 주민등록증에 반대할 필요성을 못 느낄 수 있다.
주민등록제도와 동거한지 수십년,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문제가 제기돼본 적 없는 주민등록제도에 대해 왜 새삼스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일까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 주민등록증 제도로 인해 과연 누가 '불편'하고 누가 '편리'한가를 짚어볼 수 있다.
혹여 지갑을 잃었을 때 돈보다는 주민등록증 분실을 더 골치 아픈 일로 여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주민등록증은 국민 개개인의 생활 곳곳을 지배하기 때문에 '미소지'나 '분실'로 인한 피해는 국민의 몫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강제적으로 발급함으로써 국민에게 그 피해의 책임을 묻는다. 또한 이 과정에서 국민 개개인이 내놓고 싶지 않은 정보를 정부는 '당연하게' 수집할 수 있다. 이런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불편을 느끼는 것은 국민이고 편리를 만끽하는 것은 국가이다.
인권이란 아주 단순하게 말해 국가 권력이 함부로 국민 개개인의 삶에 개입하고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국가권력을 감시 견제할 때만 보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본질적 의무를 갖고있다.
그러나, 주민등록증제도에서는 이 감시자와 감시의 대상이 거꾸로 설정돼 있고, 국민의 인권을 희생하면서 국가권력의 편의성을 도모하고 있다. 이 뒤집힌 관계 속에 주민등록제도의 반인권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주민등록제도는 기본적인 인권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란 '누구나 자기만의 비밀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 원치 않는 자기자신에 대한 정보가 드러나는 것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권리이다. 또한 개인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국가를 포함한 제3자에게 알릴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권리는 헌법과 각종 국제인권법에 보장되어 있으며, 이러한 권리의 본질적 내용은 법률로도 제한할 수 없다. 그런데 주민등록제도는 국민 개개인의 생년월일, 성별을 자동적으로 노출시키는 주민등록번호를 강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신상에 관한 141개 항목이나 되는 과다한 정보가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국가권력에 의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고 언제든지 국가권력의 의도에 따라 악용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이는 주민등록법 자체가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간첩과 범죄자 색출'이라는 불순한 의도로 만들어진 역사를 볼 때도 그러하다.
더구나 이의 수단인 주민등록번호나 주민등록표는 법률적 규정이 없는 형식적 규정과 시행령에 불과하다. 법률로써만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소위 인권보장의 기본틀조차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권위적이고 반인권적인 정권이 아니라면 모든 국민을 예비범죄인으로 바라보는 '지문날인'을 강제할 수 없다.
과거 일본정부가 재일동포에 대한 지문날인제도를 고집할 때 우리 정부 또한 그 반인권성을 비판했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 취임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주요 선진국의 경우 인권침해 시비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제도를 폐지하는 추세""라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디지털 지문인식기를 동원해 전자화된 형태의 지문을 채취하여 관리하겠다고 한다.
일본의 외국인지문날인제도에 반대했던 한 케나다인은 지문날인제도가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취급방식이나 남아공의 인종격리정책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공격한 바 있다.
국가권력이 기본권에 대한 존중이 아닌 통치의 편리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주민등록제도의 반인권성을 이제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때가 왔다. 디지털감식기에 열손가락을 대기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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