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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택시 운전사의 귀국 뒤편에 여전히 세상의 주변을 서성이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홍세화씨가 귀국했다. 남민전 사건으로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망명객으로 20여년을 외국에 머물다 마침내 그가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은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미 한국의 많은 이들이 그가 쓴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를 통해 그에 대한 기대와 그리움을 간직해 왔고, 그의 아픔을 어느 한 망명객의 것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여겨 왔기에 그의 귀국은 반가움을 넘어선 뜻깊은 것이었다.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는 한 개인의 사적인 기록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굽어지고 상처난 역사와 그 속에서 아픔 받는 사람들에 대한 차분한 보고와 기록이었고, 그의 덕분에 많은 이들은 잊혀져 있는 시대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잊혀진 듯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엿볼 수도 있었다.
그런 그가 20여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은 무엇보다 그에게 설레임이 가득한 기쁨일 것이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나마 달라진 한 역사를 실감하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아울러 먼 나라의 자칫 잊혀지고 말 망명객을 늘 잊지않고 지켜봐 준 그의 이웃들, 애써 귀국을 도운 그의 동료들, 특히 귀국 추진 모임의 모습은 홍세화 씨 본인에게만이 아니라 옆에서 보는 다른 이들에게도 흐뭇함과 고마움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고마운 '이웃'들이다.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막상 이곳 '빠리'에서(혹은 유럽에서) 그의 귀국을 바라보는 몇몇 사람들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하다. 분명히 축하할 일이기는 하면서도 다른 한켠 속상함과 우울함이 밀려듦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이 글이 결코 홍세화 씨의 귀국에 대해 어떤 불만을 표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의 귀국과 더불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
이곳 유럽에는 이런 저런 정치적인 이유로 꿈에 그리는 고국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대략 3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 중 어떤 이들은 홍세화 씨와 같은 망명객이기도 하고, 외국에 있는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과거 반정부 활동(구체적으로는 김대중씨 구출 운동 등에서 시작된 것이다)의 전력으로, 또는 과거의 숱한 조작사건의 관련자라는 이유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 많은 경우는 독일, 불란서 등의 국적을 가졌는데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다. 한국 방문을 계획하면 이곳에서 미리 간섭을 받거나, 이런 저런 사유서 작성을 강제 받거나, 한국에 가서 만날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협박을 받기 때문이다.
돌아가지 못한 구체적인 사유와 죄목은 다를지라도 홍 씨와 그의 귀국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남아있는 이들은 모두 다 한국의 어지러운 역사의 장면들이요, 아픔들이요, '돌아가야만 할 사람들'인 것이다.
남아있는 이들도 모두 '택시 운전사'처럼 혹은 그저 비슷한 일들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차분히 공감가게 설명할 수 있는 재주와 기회를 갖지 못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힘있는 친구들도 갖지 못했다.
홍세화 씨가 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이 상황이 진정 역사의 변화이고 한국 정치 수준의 발전이고 지식인들의 연대 때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홍세화 씨가 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분명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닌것 같다. 그럼 무엇인가?
홍세화 씨의 귀국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빠리에 사는 동안 자신의 처지와 마찬가지로 애타게 그리면서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을 잘 알고 있었던 이상, 그는 그렇게 혼자만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알릴 수 있는 지식과 재능이 있었다면, 그와 더불어 그의 지식과 재능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도 함께 있어야 했다. 홍세화 씨의 귀국을 추진한 귀국 추진 모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좋은 생각을 탓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홍세화 씨 외에 수많은 홍세화가 여전히 이국 땅에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들로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도 남는 지식인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아는 홍세화 한 사람만을 빼가듯 데려가고 남은 홍세화들을 잊은 이유로, 이번 귀국 추진은 '학교 선후배 사이의 챙겨주기, 유명한 사건의 관련자 알아주기, 잘 팔린 책의 저자 초청하기' 수준으로 그 의미를 퇴색시켜 버리고 말았다. 아니 그보다 이곳에 남아있는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한 번 더 잊혀진 사람들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어쩔 것인가? 그런 환호와 기쁨 뒤에 여전히 세상의 주변을 서성이나 누구도 알아주지도 않는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을 어쩔 것인가? 역사의 발전 내지 사회 변화의 환성 속에 오히려 짓눌려 하소연 할 곳 없는 이들을 어쩔 것인가? 내내 떠나 온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신념 가득한 애정으로 살아왔건만 이제 그들이 애써 싸워왔던 대상으로부터가 아니라 내내 믿어왔고 함께라고 여겼던 '우리들'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는 '여기 남아 또다시 잊혀지는 사람들'을 어쩔 것인가?
이우갑(신부, 빠리 국립 사회과학 고등연구원(E.H.E.S.S.) 종교 사회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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