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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무개(여, 33세)씨는 서른줄에 들어서서도 관공서에 가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의 첫 관공서 방문은 만 18세가 되던 해 처음으로 갔던 동사무소였다.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40대 공무원이 등사잉크가 잔뜩 묻은 롤러를 들고 이 씨의 손목을 잡더니 열손가락에 칠을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손목을 꽉 잡고 열손가락의 지문을 눌러댔다.
생각만큼 선명히 나오지 않자 짜증을 냈다. ""학생은 지문이 왜 이렇게 흐려?"" 그리고는 휴지 한조각을 던져주고 닦으라고 했다. 지워지지 않자 화장실에 가서 씻으라 했다. 비누칠을 아무리 해도 잉크는 완강했다.
마치 주민등록증 코팅 비닐속에 갇혀버린 이씨의 지문처럼. 그렇게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을 이씨는 서너번 잃어버렸다. 그때마다 경찰서에 가서 분실경위서를 쓰고 벌금 1만원을 낸 후 다시 동사무소에 가서 발급받았다.
잃어버린 이유를 기록해야 하는데 자신의 부주의함을 추궁당할 것 같아 당하지도 않은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쓰곤 했다.
이 씨는 그렇게 만든 주민등록증을 이제 또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는 최첨단 방식이다. 컴퓨터 입력창에 지문의 중심을 대면 관계 공무원이 단말기로 확인하여 입력시작 엔터키를 누르게 되어있다. 그렇게 내준 이 씨의 지문은 정부의 정보 창고 속에 자리잡을 것이다.
이 씨를 포함한 만 17세 이상의 모든 국민은 다시 지문날인을 하여 국가에 넘겨줘야 할 운명에 처해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도 인권침해라 하여 폐지하는 한편 '범죄자'에 제한하여 지문날인을 받고 있다. 이와 비교해보면, 우리 국민 모두는 '외국인 또는 범법자' 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정부는 지금 국민 모두를 예비 범죄인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지문날인이 '범죄대책과 치안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공감하여 자신의 불편과 불쾌함을 감추면 그만인 문제가 아니다.
지문날인에 반대하는 한 단체(Privacy International)는 우리가 '지문'에 대한 환상 속에서 자랐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환상이란 '나와 똑같은 지문은 다른 어느 누구도 갖고 있지 않으며 나의 지문은 변할 수 없다'는 믿음을 말한다.
만에 하나라도 이 믿음에 손상을 가할 위험성이 있다면 어찌 할 것인가.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의 디지털 시대에서는 일단 입력 계수화되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지문은 절취, 전송, 조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처럼 고도화된 기술 사회에서 집중된 정보는 언제든지 불순한 목적에 의해 변조, 탈취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전국민 지문날인' 강제와 국가관리는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국내의 인권 사회단체 일각에서는 '지문날인 거부 선언운동'을 조직할 계획이다. 함께 시작할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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