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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6·25가 돌아왔다. 해마다 돌아오는 전쟁 몇 주년이 아니라 무책임하고 선정적인 선동의 위협과 함께 왔다. '우리 사회는 과연 평화를 꿈꾸고 있는가'는 질문을 던지며, 6회에 걸쳐 '평화와 인권'의 문제를 살펴본다.<편집자>
한국전쟁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결과적으로 20세기의 가장 파괴적인 분쟁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4백만 명 이상의 한국민이 이 전쟁을 통해 죽었고, 그 3/4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었다(참고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은 2백3십만의 생명을 잃었다).
하지만, 이런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평화를 구상하는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총 한 번 안쏘는 군대가 어디 있느냐'
'도발 응징…본때 보여야'
'조공 바치기 위해 미치고 환장했다고 생각지 않겠나'
'하이테크 해군, 북 고물함정 눌러'
한마디 한마디에 적개심과 승전의지가 배어 나오는 이 말들을 국내의 내노라 하는 언론과 국회의원들이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전쟁의 선동'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들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만능카드는 '안보'이다. 국가안보의 보장 없이 인권의 보장이나 신장은 꿈꿀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들이 주창하는 안보개념은 평화와 등치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단순하게 말해 '평화'는 '전쟁의 부재'를 넘어선 광의의 개념으로 사회 안팎에서 벌어지는 온갖 갈등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평화는 '체제 안보'만을 부르짖지 않는다. 국민은 체제의 적, 외부의 적에 대해서만이 아니 그 사회 내부의 지배자들로부터도 안전해야 한다. 외부의 위협이 내부의 어떤 문제라도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내부통제수단으로 자리잡은 사회, 국가안보를 생명으로 하는 사회는 '사회안보'의 개념을 소홀히 다루기 마련이다. 억압적 노사관계, 빈부격차,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폭력 등은 심각한 갈등과 분쟁의 요소이다. 즉,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실현되지 않는 것이 가장 심각한 갈등 요소이다.
이 모든 것을 제쳐놓은 안보 우선론자들에겐 인권 보장 운운하는 것이 기껏해야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평화의 유지를 방해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그들의 선전선동은 비판을 용납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임을 자처한다.
비무장 지대를 따라 백만명 이상의 군인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만이 평화를 위협하는건 아니다. 억압과 통제라는 폭력적인 갈등 해결 방식을 택하면서 안보논리로 이 모든 것을 돌파하려 드는 사회라면 진정한 안보도 평화도 인권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평화를 꿈꾼다면 서로의 다른점, 차이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추구해야 한다. 진정한 안정과 평화를 꿈꾼다면 서해교전에서 비롯된 남북갈등을 무책임한 강경 대응의 선동으로 이용하려 들 수 있겠는가? 과연 평화를 꿈꾸고 있는 것인가? 최종으로 노리는 적은 도대체 누구인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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