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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는 전쟁의 권리를 한 국가에게 부여하는 근거가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9·11 테러가 마치 미국에 '무제한의 사냥 허가증'을 주기라도 한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거침없이 군사력을 사용하였다. 미국의 전쟁은 국제법적 근거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행동은 저지 당하지 않았다. 국제평화를 주장하는 각국의 시민단체들만이 그에 항의하고, 법절차에 따른 대응을 호소했을 뿐이다.
1945년 당시 처칠은 나치스 테러의 책임자들을 즉결처분할 간이절차를 제안했지만 트루만과 스탈린은 유럽의 형법전통에 입각한 법정이 반파시즘을 향한 공통의 목적에 보다 잘 부합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당시에는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법원도 없었고 실체형법도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양자가 모두 존재한다. 무엇을 테러리즘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유엔차원의 합의는 아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 테러를 반인간적 범죄로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또한 그러한 범죄에 대해 심판할 상설국제형사재판소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1998년 7월 17일, 로마에 모인 120개국 정부는 상설국제형사재판소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로마협약에 찬성했다. 이후 139개국이 이 협약에 서명했으나 국제법적으로 볼 때 중요한 것은 각국의 비준이다. 2002년 2월 12일 현재 52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하여 동 법원의 출범을 위해 필요한 60개국 비준에 바짝 다가서 있다.
그러나 국제형사법원을 조속히 출범시키려는 국제적 차원의 노력은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미국은 미군과 미군의 명령권자가 절차적 보장이 확실하지 않은 국제형사법원의 피고인석으로 불려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 법원의 설립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미국정부가 실제로 우려하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군사행동 전체의 합법성이 동 법정에 의해 단죄되는 상황이다. 그들은 국제질서에서 선과 악을 판단하는 일은 자신의 몫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미국의 오만 때문에 9·11테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찰머스 존슨이라는 사람이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대부분 나라들은 미국을 지원하는 듯하지만 이른바 반테러 국제연대는 가짜다."" 그의 지적은 옳았다. 견고해 보였던 반테러연대는 유럽국가들의 비판을 필두로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진작 그렇게 되었어야 했다. 이제부터라도 세계각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테러 국제연대에 맞서 평화와 반테러전쟁을 위한 국제연대를 형성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회에 계류중인 테러방지법안을 철회하고 로마협약의 비준을 서두르는 일; 이것이 평화의 국제연대를 위해 우리 정부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계수는 울산대법학부 교수이자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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