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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올해 안엔 특별법 제정을 이뤄야한다”
지난해 11월 ‘민주화운동관련 유공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민회의 당사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한 유가족들의 마음은 이러했다.
민족민주운동과 관련해 박정희 정권 하에서 죽어간 사람만 331명. 물론 이러한 숫자는 확인된 경우에 한할 뿐이다. 군사독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정부가 연이어 들어섰으나 그 어느 정권에서도 앞서 죽어간 이들의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가족들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민족민주열사의 유가족들은 본격적인 행동을 취하였다. ‘민주화운동관련유공자 명예회복 및 예우 등에 관한 법률안(명예회복 법안)’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진상규명 특별법)’의 시안을 작성해 지난해 9월 여야 국회의원 58명과 5만2천8백98명에 이르는 국민들의 명의로 법안제정을 국회에 청원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기국회에서의 의문사 진상규명 및 민주화 유공자 명예회복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고, 유가족들은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제정되지 못했다.
국민회의와의 지루한 논의 끝에 수정 보완을 거친 ‘명예회복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고, ‘진상규명 특별법 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현재 보훈처로 이관된 ‘명예회복 법안’은 주무부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법안의 폐지로까지 치닫고 있다. 국민회의는 이 법안을 보상에 중점을 둔 특별법인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로 수정, 이번 임시국회에 제출했다. 민족민주 유공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그에 따른 국가차원의 예우 요구가 한 순간에 죽음에 대한 보상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유가족들은 “5 18 열사의 경우 광주에 집중돼있어 특별법으로 제정되어도 지방자치단체가 기념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민족민주 유공자들은 전국에 산재해 있어 주무부처가 국가보훈처가 아닌 지방단체가 될 경우 기념행사나 기념일 제정 등의 사업을 벌이기 어려워 사실상 보상차원에 머물게 된다”며 “특별법안으로의 전환은 열사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다.
‘진상규명 특별법안’도 험난한 길을 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국민회의는 이 법안의 청원 당시 이 법을 인권법에 포함해 상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국민회의 인권법안에 반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민회의는 애초 약속과는 다르게 진상규명 자체가 불가능한 법무부 안을 지지하고 나섰다.
의문사와 관련된 자료는 국가정보원 등에 철저히 은폐돼 있으나, 법무부가 구상한 인권법안과 인권위 권한으로는 해당 기관이 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 자료에 접근할 방도가 없다. 또한 강제수사권과 수색영장을 청구할 수 없는 권한이 없으며, 공소시효가 정해져 있어 법무부의 인권법안에 따르면 진상규명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 아들들을 죽인 장본인이 국회에 들어가 있으니 일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이소선(전태일 열사 모친) 씨의 절규가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따라서 유가족들은 국민회의 당사 앞 점거농성, 삭발 시위 등을 벌이며 2백6십여 일 째 명예회복 법안과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두 법안은 아직 몇 개의 산을 더 넘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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