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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말 한국의 인권은 여전히 고통속에 빠져 있다. 올해의 우리나라 인권실태를 보고하는 민변의 토론결과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지속적인 남북 화해와 교류 추진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노동쟁의 관련 직권중재조항 폐지 반인도적 범죄의 공소시효 배제 수사기관의 반인권적 행위 재발방지책 마련 호주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제 마련 등을 외친다. 권위주의정권에서부터 혹은 개발지상주의나 냉전이데올로기의 억압체제로부터 계속하여 이어져 오던 인권유린의 현실이 자칭 인권대통령을 내세웠던 이 정권의 말기에서조차 뼈아프게 다가온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그것이 인권이 살아있는 세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인권을 냉전과 개발과 관료주의적 혹은 가부장적 권력앞에서 사람답게 살기를 포기할 것을 강요받아 온 셈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겨나고, 민주화보상위원회가 수없는 민중항쟁의 역사를 다시 쓰는 이 와중에서도, 인권은 여전히 고문받고 차별되며 굴종과 침묵을 강요당하는 시대적 질곡에 함몰되어 있다.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성적 지향의 평등이나 욕망추구의 권리, 인류문화유산의 향유, 관용으로서의 민주주의와 같은 또 하나의 인권이 논의되고 있는 이 시대에서, 우리는 과거와 다름없이 신념과 의견을 드러내어 나누지 못하고, 작업장에서의 인간성을 부인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니 오히려 인권을 위하여 지켜야 할 전선이 보다 복합적인 형태로 분화되어 가는 상황이다. 민변의 토론회는 ""인권상황이 과거에 비해 나아졌으나 아직도 고쳐져야 할 점이 너무나 많다""고 현재의 정권을 비판하였으나,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뻗쳐나오는 자본권력의 억압은 ""과거에 비하여 나아""진 우리의 인권상황을 더욱 더 우리로부터 소외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가보안법이나 소파, 노동억압, 고문, 가부장제, 신념에 대한 편견 등은 1215년 마그나 카르타 이래 지속되어 온 인권억압의 대표단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B. 터너의 말처럼 ""노동자들이 고용주에 대하여, 여성이 남성에 대하여, 아동 옹호자들이 부모에 대하여, 이민노동자들이 그들의 주공동체에 대항""하여야 하는, 전방위적, 전생활적 반인권상황에 봉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의 국가권력을 대체하여 오늘날 자본권력 혹은 문화권력이 국가권력의 숙주가 되어 인권의 적으로 횡행하는 시대를 우리는 거쳐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인권이 재산과 상품으로 되어 시장에 팔려나가고, 국가는 이 인권의 자유거래를 위하여 생활공동체를 시장공간으로 전이시키는 악역을 담당한다.
우리의 인권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고문과 공작의 주도자로 의심받는 자가 여전히 국민위에 군림하면서 대통령후보의 한 손이 되어 더 큰 권력을 지향하고 있는 한, 민주화보상위와 의문사위의 판정에 저항하고자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는 과거회고적 세력이 존재하는 한, 인권위의 활동에 딴지를 거는 반시대적 관료조직이 온존하는 한, 세계체제에 편승한 천민적 자본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생활세계를 식민화하고 있는 한 우리의 인권은 여전히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암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여, 2002년 말 우리의 인권은 여전히 신음중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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