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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속재판 원칙을 회복시켜달라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 구속으로 생기는 커다란 고통은 고려하지 않는다. 구속에 따른 가족의 고통은 만만치 않다. 내 딸은 초등학교 1, 2학년이다. 어린 자식들이 느끼는 고통도 고려하는지 궁금하다. 신체를 쉽게 구속하는 사회는 가족과 어린이의 소중함에 무딘 사회다. 구치소에 미결수들이 넘쳐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내가 구속되던 11월 4일은 김현철이 석방되던 날이다. 불구속재판 원칙이라는 아름다운 말과 함께 그는 석방되었다. 내가 김현철보다 더 도주·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거나 죽을 죄를 지었는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구속재판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는 헌법적 권리다. 이 권리를 회복시켜 달라.
보안관찰법에 대하여
24살때부터 41살때까지 17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내가 법원에서 받은 형기는 7년이었지만, 사상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재판도 없이 10년을 더 살았다. 양심의 자유는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다. 그러나, 사회안전법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바꾸라고(사상전향을) 강요한다. 87년 6월항쟁 이후, 사회안전법이 보안관찰법으로 대치됐다. 그러나 그 치명적 인권침해요소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즉, 보안관찰법은 '내심'을 이유로 해서 불이익을 가하는 법률이다.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조약에도 위배된다. 이것이 보안관찰법에 대해 비폭력불복종 자세를 견지하는 첫 번째 이유다.
인권운동가로서 내게 닥친 인권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매일매일 경찰이 전화를 걸어와 ""집회에 가지 말라. 누구를 만나지 말라""고 한다. 10년동안 고통받아 왔다. 보안관찰법을 따른다면 인권운동을 할 수는 없다. 이것이 비폭력불복종의 두번째 이유다.
보안관찰법의 취지는 해당범죄의 재범을 방지하고, 피처분자의 일상생활을 낱낱이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안관찰법으로 구속할 때, 일상생활을 파악 못해서 또는 어마어마한 재범의 우려가 있어서 구속하는 것이 아니다. 보안관찰법의 목적은 실질적으로 사회활동을 규제하는 데 있다.
양심의 자유를 포기한다면 나는 이미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20년을 더 산다면, 양심의 자유를 지킨 댓가로 몇 번 더 감옥에 갈 수도 있다. 반공이 아니면 국민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은 파쇼적 사고방식이다. 나는 소수자, 희생자로서 살아감으로써 우리사회의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말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몸으로 드러내겠다.
레드헌트 이적규정과 관련해
검찰이 <레드헌트>에 이적 규정을 내린 것은 다음의 두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인권영화제의 도덕성을 훼손시키려는 의도이다. 검찰이 인권영화제의 '사전심의 거부'만을 문제삼아 기소하는 것과 작품의 이적성을 시비삼아 기소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인권영화제의 순수성이 받는 상처가 큰 것이다.
둘째, 서준식을 국가보안법으로 치기 위해서다. 지난해 썼던 여러 칼럼들을 검찰이 못마땅해 한 것을 알고 있다. 좌익수 출신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검찰은 굉장히 큰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집 욕실의 천장까지 뒤진 끝에 압수해 간 것이 박노해 시집 {참된 시작}이었다.
압수수색의 문제점과 관련해
발부된 압수수색영장의 대상물은 '이적표현물 <레드헌트> 제하의 비디오테이프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 피의사건 증거의 일체'로 되어 있다. 이러한 개괄적·탐색적 압수는 헌법에 위배되는 표적수사의 도구일 뿐이다. 실제로 수사관은 인권영화제의 회계장부나 회의기록 등을 전혀 가져가지 않았다. ""왜 관계없는 물품을 가져갔냐""고 물으니 수사관들은 ""모래속에 진주가 있다""고 대답했다. 압수물품 중 {참된 시작}하나가 문제가 됐다. 박노해는 곧 사면된다는데, 서준식은 유죄판결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불법압수수색으로 확보된 물품을 증거물에서 빼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한다.
비폭력불복종운동과 법치주의
공소장에서 나는 ""현행 국법질서를 전면 부정하는 자""라고 되어 있다. 검찰은 내가 쓴 세편의 칼럼을 인용했는데, 모두 비폭력불복종을 주장한 것들이다. 우선 '도덕적 우위만이 우리의 희망이다'라는 칼럼에서 나는 대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말고 불복종운동을 벌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의 불법적인 검문을 보고 쓴 '우리 모두 감옥에 가자'는 칼럼에선 공권력의 불법을 해결하기 위해 감옥에 가자는 내용을 썼다. 세번째는 '한총련 탈퇴가 의미하는 것'이다. 한총련 탈퇴를 강요하는 것은 국가권력이 할 짓이 아닌 비열한 짓이다. 필화사건까지 각오하면서 쓴 이 칼럼을 통해 ""굴복하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라""고 했다. 나의 구속은 이러한 칼럼들에 대한 보복이다.
헌법정신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비폭력불복종할 수밖에 없다. 실정법이 인권이라는 헌법적 요청을 부정할 때 인권운동가는 실정법이 아닌 인권의 헌법적 요청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인권운동가에게는 '준법'보다 인권이 소중하다. 헌법 즉, 국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실정법을 거부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7조, 음비법의 사전심의조항, 보안관찰법, 기부금품모집규제법 등 모두 헌법적 논란이 있거나 헌법을 무시하는 법이다.
킹 목사는 ""우리가 악법을 위반하면서 잡혀가고, 이로인해 감옥이 넘쳐날 때 악법의 씨는 마른다""고 말했다. 인권운동가가 악법철폐를 주장하면서 악법을 꼬박꼬박 지키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오히려 법치주의를 뿌리채 흔드는 세력은 법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제멋대로 집행하는 검찰이다. 검찰의 자의적인 법집행이 국가를 병들게 한다. 법 적용의 평등이 이뤄지는 사회가 법치국가인 것이다.
검찰의 조사를 일체 거부했다. 표적수사에 응하지 않기 위해서다. 법적용의 평등권을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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