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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머리에는 몇년전 읽었던 한 그림책이 자주 떠오른다. 1928년 대공황 전야에 미국에서 출판된 {백만 마리의 고양이}가 그것이다. 외롭게 살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고양이 한 마리 키우고 싶어하던 중 할아버지가 ""수천, 수만, 수백만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 언덕에 도달한다. 할아버지는 그 고양이들이 모두 예뻐서 다 데리고 오게 된다. 집에 당도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꾀를 내어 고양이에게 가장 예쁜 고양이 한 마리를 결정토록 한다. 그러자 고양이는 서로 물어뜯고 할퀴면서 그 예쁜 한 마리의 고양이가 자신임을 주장하다가 모두 죽게 된다. 그리고 남은 한 마리의 고양이는 할아버지가 ""야옹아, 수백, 수천, 수만, 수백만 마리나 되는 고양이들 중에 오직 너만 살아 남았으니 어쩐 일이지?"" 하고 묻자, ""할아버지께서 누가 가장 예쁘냐고 물었을 때 저는 아무 말도 않았어요. 그랬더니 아무도 나랑 싸우려 하지 않았지요.""라고 대답한다.
나만 살아 남을 수 있는가?
우리 사회의 중심 화두는 실업이다. 날마다 '수천, 수만, 수만, 수백 만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난다. 회사와 가족을 위해 뼈빠지게 일만 했던 가장들이 졸지에 실업자로 거리에 나앉는다. 가까스로 쫓겨나지 않은 노동자들도 언제 실업자가 될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선은 옆자리의 동료가 억울하게 강제 퇴직을 당해도 외면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노동자는 하청업체가 해고를 당하는 것이 다행이고 외국인 노동자가 자기 나라로 쫓겨가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우선 급한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대한민국'의 노동자에게는 일자리를 잃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오죽하면 자살을 할까. 그런 절망은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파급된다. 가난이 싫다며 죽는 아이들까지 생겨날 정도가 아닌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5월1일 종묘공원에서는 제108회 세계 노동절 집회가 열렸다. 매년 있는 집회였지만, 민주노총이 주최한 이 집회에 쏠린 관심은 매우 뜨거웠다. IMF의 비위를 건드리는 주장이나 행동이 나올까 정부는 전전긍긍했고, 개혁은커녕 오히려 경제위기를 역이용하여 노동자를 해고하던 재벌들도 자신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노동자들의 강력한 요구가 분출될까 봐 주시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예고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투쟁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자 어느 때보다도 IMF와의 재협상, 재벌개혁, 실업대책을 촉구하는 목쇠를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게 외쳤다.
대회가 무르익어갈 무렵 노동자들의 대오 속에는 도시락이 나뉘어졌고, 다 먹은 도시락은 종이 박스에 담겨 길가에 모아졌다. 그때 주위에 있던 부랑인들 중 일부가 노동자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찾아 먹었다. 그런 모습은 종묘에서만이 아니라 시위 도중의 길거리에서도 종종 눈에 띄었다. 예전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지도 모를 그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음식 쓰레기 주워먹던 부랑인
IMF는 경제개혁을 이유로 아프리카에서도 아시아에서도 구 사회주의 동구유럽에서도 심지어는 아이들의 급식마저 빼앗고, 그 아이들이 배우던 학교마저 문닫게 만든 잔혹한 범죄자였다는 사실이 최근 진보학자들의 분석서들을 통해 고발되고 있다. IMF를 비롯한 각종 국제금융자본들은 '세계화'라는 거창한 화두를 앞세우는 인류 최대의 경제침략자임이 이제는 의심할 여지없이 드러났다. 따라서, 그들의 착취적, 투기적 행태는 오히려 규제받아 마땅하고, 규탄받아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정부도 재벌도, IMF와 외국자본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설설 기는 쥐 꼴이다. 대통령은 폭력시위보다 최루탄과 돌이 난무하는 그 시위 현장을 침묵으로 끝까지 지켜본 다수의 거리의 시민들을 주목해야 한다. 마치 10여년전 '전두환 정권 타도'를 외치던 학생들의 시위를 말없이 지켜보았던 그 다수의 사람들처럼, 그 자리에 있던 거리의 사람들이 애타게 무엇을 열망하는가를 두려워해야 한다.
경쟁을 거부하고 연대를 실천할 때
백만 마리의 고양이는 하나의 밥그릇을 저마다 차지하려다 서로 죽고 죽였다. 지금 치열한 경쟁으로 내모는 세계화의 논리는 오로지 탐욕스런 경제논리로 인류가 쌓아온 모든 소중한 가치들을 압살한다. 치열한 경쟁은 필연이고, 살벌한 '시장'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싸워 이기라는 죽음의 독려만이 있을 뿐이다. 이에 각자 살 길을 찾아 절망스런 전의를 불태울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공존의 가치를 찾아야 할 때다. 또, 마지막 살아남은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싸움판에 휩쓸리지 않는 것을 넘어 넘어 서로 싸우면 다 죽는다는 것을 목소리 높여 동료들에게 외쳐야 한다.
인권의 기본은 연대성이다. 유엔이 발행한 어느 인권 시리즈에서 서술하였듯이 ""'연대'란 인류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가질 뿐 아니라 그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고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 서는 것이다."" 경쟁을 거부하고 세계 곳곳의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일만이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고 진정한 생존을 확보하는 길이지 않을까.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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