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지옥같은 노동현장
내용
"21세기 목전의 상황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들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벌어지고 있어 충격을 준다. (주)한국타이어(대표이사 조충환) 대전공장에서는 IMF와 정리해고 시대를 맞아, 극도로 강화된 노동강도와 통제체제 아래 노동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최첨단 경비시스템을 통해 공장 내외곽의 구석구석을 감시하고 있는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은 ""회사의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을 빌어 '병영'보다 더한 공장내 실상을 전달한다. 


사실상의 강제노동

최근 한국타이어에서는 이른바 '현장자주보존활동(TPM)'이라는 이름 아래, 작업시간외의 무급노동이 진행되고 있다. 본래 TPM은 '경제위기를 노동자 스스로 헤쳐나가자'는 취지로 기계를 정비하고 작업장을 청소하는 활동 등을 말하지만, 실제로 TPM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강제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형과에 근무하는 강영식(가명·31) 씨는 ""TPM은 그 취지와 무관하게 사실상 무급잔업을 강제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강 씨는 또 ""TPM을 왜 작업시간 이외에 하느냐고 항의했다가 곧바로 '타부서로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활동에 불만을 표시하는 순간 곧 해고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작업공정 1인화

무엇보다도 현장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은 이른바 '생산할당량'과 노동강도의 강화다.

현재 대전공장 내에서 승용차 타이어(PCR)를 생산하는 성형과에서는 한달에 20일만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 과거에 비해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가 작업공정을 1인화하면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되었다고 한다. 강영식 씨는 ""옛날에는 두 사람이 PCR 230-240개를 만들었는데, 요즘은 개조된 기계를 이용해 한 사람이 250-260개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작업일수를 늘리면 노동강도를 줄일 수 있겠지만, 그때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회사측으로서 걸리는 문제다. 

또한 한달에 20일밖에 일하지 못하다 보니 노동자들(5급 기준)의 임금도 50-60만원대로 곤두박질쳤다. 더불어 작업공정의 1인화가 잉여인력을 발생시키고 이에 따라 남는 인력이 타부서로 이동되거나 정리해고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데서, 노동자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잇따르는 산재사고

또 이같은 노동강도의 강화는 곧바로 노동자들을 잦은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강 씨는 ""지난 3월 한달동안 발생한 중대재해 세건을 포함해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팔에 기브스를 하고 작업장에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 등 '웬만한' 사고는 산재 취급도 받지 못한다""며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5분만에 피묻은 기계가 돌아가는 것이 이곳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형설비 아래서 노동강도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가져다 주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산재를 당하고도 불이익이 두려워 그 사실조차 당당히 털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화장실이 곧 휴게실

특히 무리한 생산물량에 맞추기 위해선 휴식시간조차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위축되고 초라한 모습은 화장실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강영식 씨는 ""50이 넘은 아저씨가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게 우리의 모습""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검사과의 박성철(가명·32) 씨는 ""화장실 옆에 '끝내주는' 휴게실이 있지만, 관리직에게 찍힐까봐 함부로 가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전한다. 박 씨는 심지어 ""검사과 화장실은 문짝마저 떼어버려 소변보는 모습을 밖에서 다 볼 수 있도록 해놨다""고 말했다. 

또한 식사시간도 휴식을 위한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성형과 김주영(가명·28) 씨는 ""식당까지 걸어가는 시간, 밥 먹기 위해 줄 서는 시간을 빼고 나면, 5분 동안 밥을 먹고 뛰어와서 담배 한 대 피우면 끝""이라고 말했다. 


가로막힌 '단결'

그러나, 이같은 불만이 쌓여도 노동자들이 문제를 해결할 길은 사실상 원천봉쇄되어 있다. 박성철 씨는 ""회사측이 공문을 통해 단합대회를 금지한 것으로 안다""며 ""반장(관리직) 참여없이는 다섯명 이상 술자리를 가져본 일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노조가 있지만, 이 또한 무용지물이다. 대의원들 모두가 친회사측 인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의원에 입후보하려는 노동자들은 미리 주임(관리직)에게 입후보 의사를 통보해야 하며, 놀랍게도 대의원선거는 사실상 공개투표로 치러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투표행위는 붓뚜껑을 후보자의 이름 옆에 찍는 방식이지만, 한국타이어에서는 투표자가 친필로 후보자의 이름을 기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각자가 소신껏 행동할 수야 있지만, ""찍히면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한 속에서 선택은 어쩔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올 3월 치러진 대의원선거에서 이른바 '민주파' 대의원은 단 한 사람도 당선은커녕 출마조차 못한 것으로 전한다. 


패배주의와 희망

97년 해고된 박희태(29) 씨는 ""지난해 해고자들의 투쟁이 흐지부지 끝난 이후 회사내에는 패배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말한다. 박성철 씨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탄압하는 곳은 이곳밖에 없을 것""이라며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일하면서 신경질이나 팍팍내는 것뿐""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과거 섬유계통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 비하면 거기는 천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희망의 불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강영식 씨는 ""입사 초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애가 '나 잔업 안해요'라고 당당히 말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면서, ""외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걱정을 해준다면 나름대로 희망이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걸었다."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03859
생산일자 1998-05-11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유형 도서간행물
형태 정기간행물
분류1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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