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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학교당국의 지시를 받고 용공조작 사건에 가담해 많은 학생들에게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웠지만 지금까지 용기가 없어 진상을 밝히지 못했다.”
상지대대학원 교학부장인 김황일(58,당시 학생주임) 씨는 12일 참여연대 2층 강당에서 “86년 상지대 용공유인물 유포 사건은 학교비리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던 학생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당시 학장이던 박재우 씨와 기획실장이던 황재복(당시 이사장인 김문기 씨의 사위) 씨가 사주한 것”이라고 밝혔다.
유인물 화염병 직접 제작
86년 7월 중앙일간지를 통해 ‘상지대학 강사 채용시 1천만원을 수뢰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학생들은 연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그해 10월 8일 학교측은 시위 주도를 이유로 6명의 학생을 징계처리하기에 이른다. 이후 시위가 오히려 가열되는 상황에서 상지대 교내에는 ‘가자 북의 낙원으로!’ ‘붉은 깃발 아래 하나가 되자’ 등의 유인물이 유포됐다. 김 씨와 직원들은 이 유인물을 수거해 안기부에 전달했고, 강원경찰청이 곧 학생들을 연행해갔지만 유인물 제작에 대한 혐의가 발견되지 않자 집시법을 적용해 6명을 즉심에 회부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고 말았다.
김문기 이사장 금일봉 후사
양심고백에 나선 김 씨는 “교내에 유포된 유인물은 황재복 기획실장과 본인이 직접 문안을 만들었고, 이사장실 부속실에서 타이핑한 후 학장의 검토를 받아 교직원을 통해 배포했으며, 화염병은 황재복의 지시로 교직원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또 “학생들이 풀려난 후 강원도경 대공분실에서 2-3일간 수사를 받았지만 범행 사실에 대해서 부인했고, 얼마 후 김문기 이사장이 ‘고생했다’며 1백만원의 금일봉을 주었다”고 증언했다.
김 씨는 “볼펜을 사는 것조차 이사장에게 보고된 후 시행되기 때문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해 김 이사장이 사건을 사주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당시 경찰도 사건의 진실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 사건은폐 공조 가능성
당시 강원도경 수사반은 사건 직후인 16-17일경 교무과 복사기와 한글타자기를 점검한데 이어 20일에는 김모 직원을 조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결국 경찰은 16-7일경 문제의 유인물이 교무과 복사기를 통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상지대 교수 및 학생, 시민 등 2천3백33명은 지난 4일 당시 수사기록 등의 공개를 요구하는 정보공개청구를 강원도경찰청에 제출한 상태다. 앞서 92년에도 춘천지방검찰청과 원주경찰서, 강원도경에 관련자들이 진정을 냈지만, 경찰은 답변을 피했고 검찰청은 사건을 담당하지 않아 기록이 없다는 회신을 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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