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정태욱의 인권이야기
내용
"오늘도 원조교제의 기사를 보았다. 문득 생각이나서 원조교제에 관한 기사검색을 해 보았다. 금년, 작년, 재작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일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다. 원조교제가 만연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 온 사회가 원조교제를 위한 거대한 홍등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리의 여학생들의 옷차림과 눈매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고, 그들을 쳐다보는 나의 시선에서도 무언가 음흉한 냄새가 묻어 나온다. 예전의 단정하고 꾸밈없는 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기품있고 의연한 어른들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원조교제의 청소년들의 과반수가 재학생이라고 하니 이는 학교의 실패이며, 또 가출청소년들이 생계를 위하여 원조교제의 유혹에 빠져든다고 하니 이는 가정과 사회안전망의 실패이고, 원조교제를 해서 번 돈을 옷 액세서리 구입비로 혹은 선망하는 가수의 공연을 쫓아다니는 데에 썼다고 하니 이는 문화의 실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존엄을 그렇게 쉽게 포기한다는 것은 청소년들의 인생의 실패를 뜻한다.

물론 이미 오래 전부터 매춘업소 등에서 미성년자 윤락이 성행하고 있는 마당에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일상에 파고든 원조교제에 대하여는 다시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지 성인들을 처벌 신상공개하고, 청소년들은 선도하고 재활교육을 실시하면 되는 것인가? 그러한 것들은 이미 지금도 시행 중에 있다. 그러나 원조교제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혹시 자신들의 인생은 자기들의 것이며 당신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말할 청소년은 없을까? 자신들에게도 일종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의 몸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라고 반문할 청소년은 없을까? 한쪽은 필요한 경제적 이익을 얻고, 다른 한쪽은 성적 만족을 얻으니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고 항변할 청소년은 없을까? 마찬가지로 자유의사와 대가성 등을 내세우며 청소년의 성을 사는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어른들은 없을까?

원조교제가 말하고 있는 학교, 가정, 문화의 실패, 청소년들의 푸르른 인생의 굴절 이면에는 바로 그와 같은 무책임하고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성공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생 혹은 청소년 시절에는 배우고 조심해야 할 무엇이 있으며, 또 어른들은 그들에게 희망과 신뢰를 줄 어떤 절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사회문화적 형식은 이제 한낱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나? 상품시장의 논리가 오만하게 범람하고 있는 와중에 이 사회의 인권이 허우적대고 있다.

정태욱(영남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00434
생산일자 2001-04-24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정태욱
유형 도서간행물
형태 정기간행물
분류1 인권하루소식
분류2
분류3
분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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