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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너무 어려워서 사실 괜한 짓 했다는 생각도 했는데 요즘 넘어온 사람들을 만나보니 잘했다싶어 보람이 생깁니다.”
그의 목소리엔 이젠 제법 서울사람 억양이 배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3년째로 접어든 이남생활. 그러나 탈북자로써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던 시간이었기에 한창권(39) 씨는 그 중 올 한해가 유난히 힘들기만 했다.
지난 1월 15일, 국내에 거주하고 있던 탈북자들은 여느 탈북자들이 갖는 기자회견과는 다른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섰고 이 기자회견은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그들이 자유민주주의라 믿었던 한국사회가 탈북자에 대해 어떤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폭로했다. 그들은 국가정보원(국정원, 옛 안기부) 직원들이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폭력을 자행해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한 달 후 이들은 안기부가 저지른 인권유린행위에 대해 국가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관련기사 본지 1월 16일, 2월 20일 자>.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기자회견을 주도했던 한 씨 등 탈북자들은 기자회견 이후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폭행 강간 사건 등에 휘말렸다. 한 씨는 기자회견 이후 친구와의 사소한 싸움 끝에 폭력혐의로 고소돼 한동안 철창신세를 지기도 했다. 또한 기자회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홍진희(31) 씨 역시 사귀던 여자로부터 고소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곧 이러한 일들은 국정원이 탈북자들의 주변사람들을 교묘히 회유 협박해 만들어낸 공작이었음이 밝혀졌다. 결국 홍 씨 등에 대한 고소는 취하됐다.
한 씨 등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 기자회견이 있은 후, 국정원에 의한 탈북자 인권침해 행위는 중단됐다. 또한 무분별하게 진행되던 감시와 제약도 많이 없어져 탈북자들의 해외여행도 가능하게됐다. 한 씨 등의 용기있는 행동이 빛을 본 것이다.
얼마전 서울 길동에 고기집을 차렸다는 한 씨는 말한다. 배고픔을 못 이겨 탈북했지만 먹고사는 문제 말고도 소중한 ‘인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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