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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은 12월 14일부터 24일까지 하루소식 독자들을 상대로 99년 한해동안 발생한 국내 인권사건(총 55문항)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 그 가운데 ’99 인권 10대 뉴스를 선정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모두 72명이 참여해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1. 국가보안법 개폐투쟁 불붙어(72%)
보수 벽 앞에 개정안 상정도 못해
80년대 말 ‘반민주악법철폐투쟁’, 90년대 초 ‘국가보안법철폐를 위한 범국민투쟁본부’ 결성이래 거의 10년 만인 올 하반기에 전국적으로 종교, 시민사회단체를 아우르는 연대기구가 구성돼 활발한 국가보안법 개폐 투쟁이 전개됐다. 신부들의 단식삭발농성을 시작으로 각계 시민사회에서 농성, 집회, 신문광고, 서명운동이 연일 이어졌다. 여기에 유엔인권이사회는 지난 11월 자유권규약에 대한 한국정부 2차 보고서 심의 결과 국제인권규약에 부합하도록 국가보안법 7조의 즉각적인 폐지 등을 권고해 힘을 보탰다. 이런 투쟁과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는 우리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인권보장을 가름하는 기준이 돼가고 있다.
그러나 보수의 ‘벽’은 견고했다. 초기부터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의 주도권은 정치권에 있었다. 김대중 정권은 ‘인권’을 내세울 때마다 ‘국가보안법 개정’을 약속했고, 국민회의는 구체적인 개정안까지 마련했다. 이에 한나라당, 자민련 등 보수세력들은 ‘색깔론’과 안보논리를 들이대며 반발했다. 결국 개정안은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시간을 주면 해결하겠다”는 말로 국가보안법 개폐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또 다시 외면했다.
2. 국가횡포에 대한 시민사회의 자성(57%)
지문날인 거부운동 시작돼
국가권력의 부당한 강제행위에 대한 30년만의 저항 지문날인 거부는, 68년 이후 단 한번의 문제제기 없이 지속돼 온 주민등록증과 지문날인에 대한 시민사회의 자성이었다.
지난 5월 정부는 주민등록증 경신 계획을 발표하면서 17세 이상의 모든 국민의 지문을 채취하고 디지털로 보관하기 시작했다. 전 국민 동원체제를 연상케 하는 정부의 일제 지문채취와 지문 전산화 작업은 결국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딪쳤고, 사회인사 1백50여명을 시작으로 한 지문날인 거부 선언운동은 PC통신과 지역단체를 중심으로 많은 국민들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정부는 지문채취와 전산화 작업을 그치지 않고 있으며,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국민에게 불법행정을 일삼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는 지문날인 거부를 선언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지문날인 제도와 지문전산화 폐지’를 요청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이다.
3. 이근안 출현과 고문 공소시효 논란(47%)
고문 사실 잇따라 확인…가해자 처벌 못해
이근안이 나타났다. 80년대 악명 높은 고문행각 후에 은신, 11년간 도피생활을 하던 전 경기도경 공안분실장 이근안이 지난 10월 28일 제발로 검찰청사를 찾은 것이다. 이근안의 출현은 곧바로 △과거 고문 사건에 대한 증언 △고문범죄 공소시효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근안이 직접 고문을 담당한 김근태(국민회의 부총재) 씨 사건을 비롯해, 함주명, 김성학 씨 등의 간첩조작사건 등이 주목을 받게 됐고, 나아가 90년대 안기부에 의한 고문사건에 이르기까지 역대정권의 비인간적인 범죄행각에 대한 증언이 잇따랐다.
사안의 심각성을 느낀 검찰도 곧바로 수사에 착수, 이근안의 도피행각을 도와준 전직 경찰청 고위간부를 찾아내고, 정형근(한나라당 국회의원)의 고문개입 사실도 일부 확인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국내 인권단체와 법률가들은 “고문과 같은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국제법상으로도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고문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촉구했지만 검찰은 이근안의 고문행위에 대해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공소권없음” 결정을 내려 역사 앞에 또 한 번 부끄러운 자취를 남기고 말았다.
4. 국가인권위 설립 좌초 위기(39%)
법무부의 딴죽걸기, 인권법 제정 연기돼
법무부의 오만과 아집이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을 좌초위기에 몰아넣고 말았다.
98년 9월 첫 시안이 발표된 이래 ‘법무부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정권의 법안’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인권법안의 문제는 현 정권의 인권정책의 허상을 드러낸 리트머스시험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4월 특수법인으로 인권위원회를 설립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인권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됐다. 인권활동가 30여명은 일주일간의 단식농성으로 이에 응답했다. 특수법인 인권위원회는 검찰과 법무부의 감독과 통제 하에 놓일 수밖에 없는 필연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국내외 인권단체들과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한 여당은 9월 이후 인권법의 연내 제정을 목표로 법안수정의 가능성을 탐색했지만 검찰세력의 저항을 끝내 극복하지 못해 12월 20일 법안제정의 연기를 선언했다. 인권에 대한 철학과 전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여당과 법무부가 정권홍보용 상품으로 인권위를 설치하려고 하는 한 다음 국회에서도 국민을 위한 인권위 설치는 결코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5. 지속적 언론개혁 토대 <조선일보> 사건(37%)
언론 및 표현의 자유 확대에 영향
지난해 <월간조선> 11월호로부터 촉발된 <조선일보> 취재거부운동과 국내외 학계의 언론 학문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방은 올해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마녀사냥식 사상공세 앞에 지식인사회와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대응하면서 처음으로 <조선일보>는 궁지로 내몰렸다. 올 1월 <조선일보>는 최 교수가 제기한 고소사건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그의 기고문과 논문을 게재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조선일보 취재거부운동은 1차적인 승리로 귀결됐다. 하지만, 4월초 갑작스럽게 최 교수는 경질됐는데, 이는 결국 우리 사회의 보수층을 대변하는 <조선일보>가 건재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 취재거부운동은 이후 ‘언론개혁시민연대’로 거듭나면서 언론개혁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게 됐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조선일보> 비판 활동도 활기를 찾았다. 이로써 보수우익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선일보>는 처음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개혁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자극하는 한 계기로 자리잡았다.
6. 생존을 위한 사투 지하철 파업(34%)
김대중 정권 노동탄압의 전형적 사례
지난 4월 19일 새벽 4시 서울지하철 노조는 정부의 구조조정에 맞불을 놓는 대규모 파업에 들어갔다. 지하철 파업은 작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맥을 잇는 올해 가장 치열했던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었다. 지하철 노조는 파업을 강행하기 전 고건 시장 면담 등 정부와의 협상을 꾸준히 추진해 왔지만 정부는 오히려 공안대책협의회를 꾸려 노동자들을 탄압해 왔다. 정부가 울고 싶은 노동자들의 뺨을 친 격. 지하철 노조 파업은 공공연맹 총파업에 도화선이 되어 모두 19개 사업장에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그러나 서울대와 명동성당을 진지로 삼은 파업은 8일만에 끝났다. 정부의 강공,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의 매도, 자신의 불편만을 생각하는 국민들의 힐난 그리고 백만 원군을 약속했던 한국통신의 파업 유보 등이 그 원인. 지하철파업은 복귀 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공사 측은 파업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을 상대로 ‘직권면직 소명서’라는 이른바 ‘노동자용 전향서’를 강제했으며, 징계와 해고, 고소고발 등 인권유린을 일삼았다.
6. 되풀이되는 대형참사의 악몽(34%)
총체적 부실공화국, 안전지대는 없다
99년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악몽이 되살아난 한해였다.
지난 6월 30일 경기도 화성군 씨랜드 수련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망유치원생 19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가더니, 10월 30일에는 또다시 인천 인현동 호프집에서 화재가 발생해 중고등학생 60여명이 죽고 40여명이 부상당하는 대형참사가 빚어졌다.
씨랜드 수련원과 인천호프집 화재사건은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부패의 먹이사슬과 공무원들의 직무유기, 눈먼 이윤추구의 논리가 정교하게 맞물려 언제 빚어질지 모르는 무수한 참극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참사공화국’이라는 한국형 위험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번 사고는 대형참사가 불러올 절멸의 위기로부터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 국가가 이러한 절멸의 위기속에 국민의 생명을 방치하는 것 또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것, 그리고 총체적 부실공화국을 전면적으로 개조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권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당연히 국가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8. 정부가 유도한 조폐공사 파업(33%)
특검제 도입됐으나 수사 공정성에 의문남아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의 취중발언을 통해 엄청난 공작과 음모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조폐공사의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노조 파업이 검찰의 개입 아래 유도됐다는 것.
특별검사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수사방향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수사팀에서 철수했던 김형태 전 특검보와 특별수사관들은 대검찰청 명의의 ‘공기업구조조정과정의 문제점 및 대책’(98.10.7) 등 3종류의 파업대책 문건을 공개하며 대검 공안부가 직접 파업을 유도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강원일 특검팀은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을 강희복 전 사장의 1인극으로 규정하며 정부기관의 조직적인 개입은 없었다는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최초 검찰수사와 국회 청문회, 그리고 특별검사팀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파업유도사건의 전모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결국 이 사건은 무성한 의혹만 남긴 채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고 있다.
9. 노조 정치 활동 마지막 족쇄 풀려(31%)
노동단체 정치자금 기부금지 위헌 결정
노동단체의 정치활동을 가로막는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됐다. 지난 11월 헌법재판소(주심 김문희 재판관)는 노동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고 있는 정치자금법의 관련 조항(12조 5호)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렸다. “헌법이 정한 표현 결사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 위헌 결정의 내용이다. 이에 따라 노조 등 노동단체에게도 사용자 단체 등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정치자금을 기부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실 지난 97년 3월 노동법 개정을 통해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규정이 삭제됐지만 실제로는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등에 걸려 노동단체의 정치활동은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선거법이 개정돼 노조의 선거운동이 보장된 데 이어,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이제 노동단체의 정치 활동을 막아 온 제도적 규제는 모두 풀리게 됐다.
10. 빈곤인구 1천만 시대 도래(29%)
정부의 공허한 빈곤정책,
97년말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빈곤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섰다는 발표가 나왔다.
지난 11월 참여연대와 유엔개발계획(UNDP)은 법정 최저생계비인 월소득 23만4천원 이하의 빈곤인구가 전 인구의 18.8%인 1천29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은행도 한국의 도시빈민 비율이 97년 9%에서 지난해 18%로 두배 가량 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총소득의 경우 96년 하위 20%의 소득이 상위 20%의 30.5%였으나, 99년에는 17.4%로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등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빈곤계층이 확대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생활보호예산에 대한 축소방침을 발표했다. “경기의 활성화로 실업자수 감소가 예상돼 생활보호 예산의 증액이 필요없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더구나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대한 예산조차 확보되지 않아 정부의 빈곤정책은 공허함만 더하고 있다.
10. 유가족들의 국회 앞 농성(29%)
민주화운동 보상 의문사 법안 마침내 국회 통과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가족들의 농성은 99년 한해도 계속됐다.
유가족들은 지난해 11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등에 관한 법’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 천막을 짓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거라 믿었던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고 유가족들은 법안 처리를 촉구하며 천막농성이외에도 수차례에 걸친 단식농성과 삭발농성, 국회의원실 점거농성 등을 계속해왔다. 유가족들의 지난한 투쟁은 마침내 올 12월 정기국회에서 두 법안이 통과되는 결실을 낳았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시행령을 제대로 만드는 일과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일 등 과제들은 여전히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외에 10대 뉴스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정신지체장애인 강제불임수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도감청 시비’ ‘집시법 개악’ ‘농어촌 작은학교 통폐합’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 ‘에바다 농성 3년’ ‘유엔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고문경찰관 실형 선고’ 등이 올해의 주요 인권뉴스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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