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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항쟁 시위 도중 의문사한 이태춘 씨(당시 27세, 회사원)의 죽음에 대해 법원이 “경찰의 과도한 시위진압에 의한 사망”이라고 판결했다.
13일 부산지방법원 제7민사부(재판장 신우철 판사)는 이태춘 씨의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선고공판에서 “이번 사건은 경찰과 전경들의 과도한 시위진압 및 최루탄을 사용한 직무상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국가는 소속 공무원들의 직무수행상 불법행위로 인하여 이태춘 및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손해배상의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유가족들이 청구한 손해배상은 기각했다.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시효는 피해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이다.
추락위험 고가도로에 최루탄 난사
이태춘 씨는 87년 6월 18일 부산 동구 좌천동 ‘오버브릿지’(고가도로) 시위 도중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진 뒤 6일만에 사망했다. 당시 이 씨의 직접 사인은 ‘뇌좌상’이었고 이 씨의 오른쪽 이마 윗부분에서 정수리를 거쳐 20센티미터 이상의 두개골 골절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의 죽음에 대해 경찰은 ‘단순추락사’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유가족 등은 △이 씨의 온몸에 최루탄 가루가 묻었던 점 △이 씨가 병원으로 후송되었을 때 “최…최…”라는 말을 하려 애썼던 점 △추락임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다른 부분에 일체의 외상이나 골절이 없는 점 등을 들어 ‘경찰의 과잉진압’ 또는 ‘직격탄’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오버브릿지 시위’는 6월항쟁 중 부산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시위였으며, 당시 경찰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다연발탄과 최루탄을 난사하며 체포조를 투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재판부도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였던 오버브릿지는 시위대열이 경찰의 체포조 투입으로 혼란에 빠지거나 최루탄의 난사로 감각을 상실하여 눈을 일시적으로 못 뜨게 된다든지 하면 추락할 수도 있는 위험한 곳”이라며 경찰의 과실을 인정했다.
한편, 이날 선고결과에 대해 유가족들은 “아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진 것이 아니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부산 경남 울산지구 합동추모사업회도 “이번 선고를 통해 이태춘 씨가 경찰의 과도한 시위진압 및 최루탄 사용이라는 불법행위에 의해 사망했음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다행이지만, 군사독재시절의 의문사에 대해 공소시효를 따지는 것엔 반론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합동추모사업회와 유가족 등은 “개인의 경우 손해배상의 공소시효가 10년인데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의 시효가 5년으로 제한된 것은 법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신청을 제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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