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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영화에 대한 공연윤리위원회(공윤)의 심의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사전심의’로 인해 파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4월 제2회 서울다큐멘타리 영상제에서는 본선 진출작이던 <레드 헌트>(제주 4 3항쟁 소재)가 소재에 문제가 있다는 주최측의 일방적 판단에 의해 상영이 취소되는 사태를 맞았다. 반발이 뒤따르자 주최측은 “공륜 심의에서 통과되면 상영을 하겠다”며 입장을 바꿨지만, “사전심의를 받을 수 없다”는 제작자측의 입장에 따라 작품은 결국 상영되지 못했다. <레드 헌트> 사태는 곧바로 심사위원 3명과 코디네이터, 프로그래머 및 자원봉사단의 집단 사퇴와 수상자의 수상거부로까지 이어졌다.
‘사전심의’가 가져온 파문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2일 제1회 시민영화축제에서는 “사전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화체육부와 공연윤리위원회, 종로구청측의 상영중단 압력이 계속되더니, 급기야 관객 1백50여 명이 들어선 상영관의 음향시설을 꺼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어 애니메이션 10작품이 상영될 예정이던 4일에도 무려 9작품의 상영이 취소되는 파행을 겪었다.
이번 시민영화축제에는 23편의 소형단편영화가 상영될 예정이었지만, 공윤의 상영허가가 내려진 작품은 4편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윤에서 심의미필작으로 문제삼은 작품 가운데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어머니의 보랏빛 수건>, 금관영화제(문체부 주관) 수상작인 <우리 낯선 사람들>, 서울여성영화제 상영작인 <있다> 등 기존영화제 출품작 또는 수상작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영화제 출품작 등 심의 면제해야
시민영화축제 집행위원회측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비영리 소형단편영화와 영화제 상영작에 대해서는 조건 없이 심의면제를 인정해 줄 것”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행 영화진흥법 상으론 사전심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일반 극장 상영작에 대한 심의는 인정한다 하더라도 영화제 출품작과 비영리적 작품들에 대한 심의는 우선적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영화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부천 국제환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이용배 씨는 “영화제 출품작을 검열하지 않는 것은 국제적 관례”라며 “영화제에 출품하는 작가의 상식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
김혜준(영화연구소 실장) 씨는 “‘사전심의’가 선별적으로 실시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화체육부가 관심을 가지면 문제가 되고 눈감아주면 별 문제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사전심의’ 문제는 당국에만 그 책임을 돌리기도 어려워 보인다.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전심의’를 현실로 인정하면서 정면돌파보다는 우회적인 편법을 구사하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국내 최대 영화제였던 부산국제영화제의 출품작들 역시 사전심의를 피해 가진 못했는데, 오석근 영화제 사무국장은 “1차 적으론 검열을 안 받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현실로 존재하는 제도와의 갈등과 고민은 어쩔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용배 씨도 “이전까지 영화제들이 심의문제에 편법으로 대응해 온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올 가을 영화팬들은 또 하나의 영화제와 만나게 된다. 오는 8월 29일부터 9월 5일까지 제1회 부천 국제환타스틱영화제가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사전심의’가 존재하는 한 관객들은 또 한번 가위질의 농간에 의해 작품감상의 권리를 봉쇄 당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프로그래머 이용배 씨도 “공륜의 심의 문제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며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수용해 더 이상 가위질과 검열의 굴레를 씌워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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