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네이스(NEIS)를 둘러싸고 각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갈등이 지속되면서 세간의 관심은 네이스 문제의 본질인 '정보인권'이 아니라 교단갈등으로 모아지고 있고, 대안마련을 위한 논쟁도 '네이스 보안 실행이냐, C/S냐'라는 미봉책을 마련하는 데 급급하다. 이 시점에서 네이스 사태의 근본 원인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네이스가 갖고 있는 많은 문제점 중 하나는 '자기정보통제권'의 침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보주체의 동의없이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인데, 학생들은 네이스 도입 이전부터 이 권리를 침해받아왔다. 일반적으로 교육제도는 국회나 정부에서 결정하고,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결정사항을 단위학교에 통보하면 학교는 수동적으로 따르는 형식으로 시행된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아예 배제된다. 어떤 제도가 어떤 식으로 시행되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되어있다. 이 형식은 네이스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교육부는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네이스의 시행을 결정했고, 단위학교들은 결정된 사항이니 일단 시행했다. 일선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네이스에 대한 소개조차 하지 않은 채 그 많은 정보들을 입력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새로운 신상정보를 기입하는 순간에도 이 정보들이 어떤 형식으로 집적되는지 알지 못했다. 이것은 비단 네이스에서뿐만 아니라 수기, SA, C/S 형식에서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네이스 문제의 근저에는 군대와 흡사한 '하향적 명령' 구조로 짜여있으면서, 명령체계의 가장 끝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정보조차 전달되지 않는 교육계의 구조적 모순이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학생들이 네이스에 대해 미리 알았다고 할지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나라 교육은 학생을 관리와 행정과 통제의 '대상'으로 볼 뿐, '교육주체'로서 교육제도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인식은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학생은 교육의 직접 당사자임에도 언제나 그 결정과정에서 소외당한다. 네이스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나의 민감한 정보들이 어떻게 관리되느냐에 관한 결정에서도 소외당했다.
학생은 '교육주체'이지만 의사를 반영할 길도 없는 구조적으로 대상화, 객체화된 나약한 주체이다. 그래서 학생에게 '교육주체'라는 말은 실질적으로는 의미없는 용어다. 정보인권에 대한 담론 속에서 '정보주체'라는 시각이 새롭게 대두되었지만, 정보사회조차도 학생을 객체화시킨다면 '정보주체'라는 용어 또한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네이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더 이상 '주체'인 학생을 객체화시키지 말고, 이성을 지닌 주체적 인간임과 동시에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임을 인정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다""고 명시하고 있다. 1948년에 채택된 이 선언의 내용이 2003년을 사는, 네이스에 의해 발가벗겨진 고3에게는 더없이 간절하게 느껴진다.
김선미 (고3, '청소년의 힘'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