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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부천으로 접어들자마자, 낡은 집과 시커멓게 타 내려앉은 집들이 띄엄띄엄 서 있는 을씨년스런 동네가 펼쳐진다. 5분마다 한번 씩 전기줄에 닿을 듯 낮게 지나가는 김포행 항공기들의 굉음에 타지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부천시 고강동, 이른바 ‘오쇠동’이라 불리는 동네다.
심한 항공기 소음으로 지난 92년 공항시설구역으로 지정돼 곧 공항확장공사가 시작될 이 곳에도 여전히 사람은 살고 있다. 96년을 전후로 대부분의 주택 소유 주민은 보상비를 받고 이주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이주대책이 없는 세입자 110여 가구가 아직 남아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가 있어야지.” 세입자 오명숙 씨가 내뱉은 첫 마디다. 지난 25일 일어난 화재사건은 이 지역 주민들을 더욱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날 새벽 이 동네 조모씨 집에서 조씨 부부가 신문배달을 나간 사이 불이 나 잠 자던 4남매가 모두 죽은 것이다. 맏이가 겨우 9살이었다. “여기서 하루하루 사는 게 무섭고 끔찍스러워요. 어린애들이 불 속에서 죽었다니…” 오 씨는 말을 잇지 못한다.
세입자들은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질렀을 것이란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올 들어서만 이 지역에 불이 37번(부천소방서 자료)이나 났다는 사실은 이러한 의혹을 더욱 부풀린다. 세입자대책위의 이형기 부위원장은 “대부분 불은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이사가고 난 며칠 후에 일어났다”며 “이번에도 같은 건물의 다른 가족이 불 나기 이틀 전에 이사갔는데, 빈집인 줄 알고 불을 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오 씨는 “무섭게 해서 (여기서) 나가라고 자꾸 불을 놓는 거겠지”라며 수많은 화재가 철거를 원활히 하기 위한 수단일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천경찰서는 피해자 가족의 부주의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세입자 신순례 씨는 “이제껏 수없이 불이 나도 경찰이 수수방관하고 있었으니, 사람까지 죽게 된 것 아니냐”며 “실화든 방화든 화재원인을 철저히 밝혀야 할텐데…”라며 한숨을 쉰다.
어른들도 무서운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10살먹은 전모 어린이는 “(죽은) 그애들이 꿈에 나왔어요”라고 말한다. 11살짜리 최모 어린이는 “빨리 이사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 못 가죠”라고 말한다.
92년 이곳이 공항시설구역으로 지정되고 난 후, 세입자들에게는 이주대책비로 4백3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한다. 오 씨는 “다른 데 가서, 보증금도 안 되는데 어떻게 살겠냐”고 말한다. 오 씨네는 6만원짜리 사글세방에 살고 있었다. 남아있는 다른 집들도 이형기 씨네가 사글세 10만원, 유정숙 씨네가 4백50만원짜리 전세집 등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이사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해 부천시청이 제시한 임대주택마저도 보증금 2천만원, 월 임대료 23만원인 24평형의 중산층용으로 가난한 세입자들에게 대안이 되지 못했다. 때문에 세입자들은 부천시청과 항공청에 보증금 1천여만원, 임대료 15만원 내외로 이들이 부담할 수 있는 18평형 미만의 임대주택과 가이주단지 제공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무리한 요구일까?
한편, 네 어린이의 죽음과 관련 부천YMCA, 부천여성의전화 등 지역단체들은 화재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할 것을 사법당국에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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