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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명동을 찾아오기에 어느덧 너무나 친근한 여름날의 풍경이 되어 버린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캠페인’의 첫날이었다.
“양심수가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갇혀있는 양심수가 있나요?”
지나던 한 시민이 조건 없는 양심수 전원 석방을 촉구하는 가두서명을 받고 있는 자원봉사자에게 묻는다. 이렇게 반문하며 서명대를 찾은 시민들이 5일 하루만 5백 명을 훌쩍 넘었다.
8 15 특별 사면을 앞두고 이번에는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버릴 수 없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어머니들이 보랏빛 수건을 힘껏 동여맨다. 두 팔을 벌리면 양 벽에 손이 닿고 누우면 발 밑으로 한 뼘 공간이 남을까 말까한 0.75평의 밀폐된 감옥에 김어준(딴지일보 발행인) 씨 등 6명의 자청 양심수들이 다녀갔다.
대전교도소에 갇혀있는 류락진(73) 씨의 맏딸 류소영 씨, 중 1 때 투옥된 아버지는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무기수에서 18년 수감으로 이어진 옥고를 치르고 자유인이 되었다. 이제 같이 살 수 있는가 싶더니 다시 94년 구국전위사건으로 감옥으로 되돌아갔다. 그 세월동안 류소영 씨는 3명의 아이를 둔 주부가 되었다. 또다시 가슴을 조이는 8 15는 다가오고 이번에는 아버지가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되길 바라며 울먹였다. 이런 마음을 품는 이는 비단 류씨만이 아니다.
이날 참석자들은 사람을 위하고 민족을 사랑했던 양심수에게 준법서약서를 쓰게 하는 것은 또다시 양심수를 죽이는 행위라며 이번 8.15 광복절에는 몇몇 인사에 대한 선별적인 사면이 아닌 양심수 모두가 조건 없이 사면돼야 한다는 염원을 모았다. 이것은 한 여름밤의 꿈일까?
한 참석자는 기념일이면 요란하게 떠들며 양심수를 풀어주고 풀어준 양심수를 다시 하나 둘 감옥으로 보내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8 15 특별사면은 무의미한 것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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