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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전 척박한 팔레스타인에 사람의 아들이 태어났다. 사람들은 그를 예수라 했다. 고대사회 당시는 노예제를 기반으로 하여 로마가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이라, 노예는 사람이 아닌 가축이나 동물과 같이 취급받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척박한 시대에 예수는 세상을 향해 감히 '생명이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 했다. 이 귀중한 생명을 위해 그는 끊임없이, 그리고 철저히 낮은 곳을 향했다.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질병으로부터의 해방,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등 가난한 자를 위해, 병든 자를 위해, 억압받는 자를 위해, 민중을 위해 그는 사람이란 것을 느끼게 했다.
사회의 변혁을 꿈꾸는 나에게도 인권을 가르쳐 준 이가 있었다. 2년전 평생을 고생만 하시다가 유명을 달리하신 외할머님이 그분이시다. 할머님 89세의 성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에서부터 인생과 시대의 의미를 다시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분들의 세대는 실로 나라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은 공존한다는 등식이 딱 들어맞는 그런 세대들이셨던 같다.
그들은 20세기 초 서구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해 버린 조선왕조의 절대절명의 위기인 구한말에 태어나서 봉건시대를 겪어야 했다. 또한 저 기억에서조차 떠올리기 싫은 일제 36년의 강점기를 식민지 시대로 겪어야 했다. 포로의 생활, 치욕의 시대를 온몸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민중들이었다. 그리고 해방을 맞았지만 또 다시 3년이라는 미군정의 식민지 경험을 거쳐 동족상잔이라는 끔찍한 한국전쟁의 와중에 집단학살을 직접 보고 경험해야 했던 그런 세대들이셨다. 평생을 노점상으로 일구시면서 구한말부터 나라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과 함께 걸어야 했던 눈물의 삶, 이는 한없이 슬프고 가슴 저려 아픈 민중의 노래였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 이때까지 운동을 하면서 못내 힘들어 쓰러 지칠 때마다 이 민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 민중은 항상 내 가까이 서 있었다. 다름 아닌 할머님이셨던 것이다. 민중이라는 단어가 힘들어 지칠 때에는 항상 추상이 아닌 실존으로 가까이 계신 할머님을 보면서 위로와 용기로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내심 대단한 지표로 삼았던 것 같다.
2002년전 팔레스타인의 예수가 지금 이 땅, 이 시대에 산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예수는 예나 다름없이 또 낮은 곳으로 향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병든 자를 향해, 가난한 자를 향해, 억압받는 자를 향해 사회운동을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은 분명 화려하지도 찬란하지도 않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자기 권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사람은 비로소 사람다와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이 시대에 사회운동가로 태어났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내가 내심으로 사회운동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은, 이런 선진들의 후예라는 자긍심이 한편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영일 씨는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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