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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밝히거니와 나는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나의 전술은 “우리 모두 한 목소리로 폐지를 외치면서 궐기하자!”가 결코 아니다. 나는 인권운동가로서 국가보안법에 반대할 책무뿐만 아니라 실제로 폐지로 이끌기 위한 ‘치명상’을 입힐 책무를 지고 있다. 나는 국가보안법의 급소인 7조를 똑바로 겨냥하면서 국가보안법에 건곤일척의 치명타를 가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 아다시피 국가보안법 7조는 ‘적’(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발언을 하거나 그런 목적으로 단체(이적단체)를 구성하거나 혹은 ‘이적표현물’의 제작, 소지 같은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이 조항은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개념의 모호함 때문에 오래 전부터 자의적인 법 집행과 남용을 가능케 하는 전형적인 ‘고무줄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바로 그런 성격 때문에 이 조항은 공안세력이 실적을 올리기에 더없이 편리한 도구가 되는 것이고 국민 입장에서는 언제 자기에게 불똥이 튈지 모를 불안하기 짝이 없는 조항인 것이다. 경찰관의 횡포에 “우리 법이 빨갱이 법만도 못하다”고 항의하다 구속된 사람, ‘태백산맥’이라는 책을 썼다고 잡혀간 소설가, 대학 교재를 삐딱하게 썼다고 잡혀간 교수들…. 이러니 술집에서 말을 조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7조는 국가보안법의 여타 조항과 분명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여타 조항들이 한결같이 북한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음에 비해 이 7조는 ‘내부의 적’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는 모든 사람들 중 7조 위반으로 구속되는 사람의 비율이 무려 95%선을 오르내린다는 사실이다. 법집행을 엄격히 하고 남용을 없애겠다는 이야기는 여러번 되풀이 되었지만 언제나 불가능한 거짓말이었다. 95%선이라는 비율은 5공화국 때나 김대중 정권 하에서나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우리는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 도대체 국가보안법이 누구를 위해서 누구를 겨냥해서 존재하는 법인지를….
작년 말, UN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사실상 국가보안법 7조의 폐지를 권고했다. 그러나 개정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검찰세력이 끝까지 남기려고 도모하는 조항이 바로 7조임이 드러나 있다. 7조 폐지는 지금 현실적으로 절망적이리 만큼 어렵다. 7조야말로 객관적으로 이번 국가보안법 싸움의 가장 뜨거운 결전장이요 현실적으로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할 지점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7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우선적 청산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국가보안법 반대 주장은 진정 국가보안법의 정체를 보지 못하는 허술한 운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폐지!”는 당연히 옳다. 그러나 그것은 과제이지 전술이 될 수는 없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우리의 전술은 “폐지”가 아니라 “7조 폐지”라야 한다.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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