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특집> 육지 위의 노예선 ‘양지마을’ (3)
내용
"양지마을에 입소하는 것은 곧 ‘바깥세상과 영원히 단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단 양지마을에 들어온 원생이 퇴소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5년, 10년 이상 수용중인 원생이 수두룩하다는 점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원생의 퇴소와 관련, 보건복지부의 ‘생활보호사업지침’은 “시설의 장이 원생에 대하여 월 1회 이상 상담을 실시해야 하며, 원생 중에 퇴소를 원하거나 사회복귀가 가능한 자를 파악해 퇴소심사서 및 의사진단서 등 관계자료를 매월마다 심사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양지마을의 운영실태를 살펴볼 때, 이러한 지침은 ‘쓸모없는 종잇장’에 불과했다. 원생들 가운데엔 한달에 한 번은 커녕, 수년 동안 단 한 차례의 상담도 해보지 못한 사람이 여럿이었다. 입소심사와 마찬가지로 퇴소심사 역시 엉터리였던 것이다.


가족면회 방해

따라서 상담을 통해 퇴소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며, 양지마을에서 퇴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가족이나 연고자가 면회를 와서 데려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양지마을측은 가족의 면회마저도 방해하고 가족이 면회 온 사실을 원생에게 숨기기조차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진상조사단과 함께 양지마을에서 나온 이상흔 씨는 곧바로 청주에 살고 있는 아버지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동생과 아들이 세 차례나 면회를 갔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이 씨는 양지마을에 있던 동안, 가족이 면회 온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했으며, 면회온 가족들은 “이 씨가 나가서 생활할 수 있을 때쯤 되면 연락하겠다”는 양지마을측의 말만 듣고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또 양지마을에선 전화통화가 허락되지 않으며(공중전화 한 대 없다), 편지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이나 연고자와의 접촉이 ‘원천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퇴소자 명단 조작

심지어 양지마을은 퇴소하지 않은 원생을 서류상에 퇴소자로 기록해 두기까지 했는데, 이는 퇴소시키지 않고 맘껏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문병기(41) 씨와 송만성(48) 씨는 지난해 12월 12일 ‘귀가’ 조치된 것으로 서류상 기록되어 있으나, 지난 20일까지 양지마을에서 생활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 씨는 양지마을에서 미싱기술을 전수해 온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진상조사단이 다녀간 이후인 20일 갑작스럽게 ‘귀가’조치됐는데, 이에 대해 문 씨는 “명단에 없기 때문에 풀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같은날 퇴소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손동수(30) 씨는 지금까지 양지마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박영한(20 서류상 94년 3월 14일 귀가), 김대역(16 94년 4월 7일 연고귀가)씨 등도 서류와는 달리 모두 양지마을에서 생활중이었다. 

한편, 양지마을측은 명단에 없는 문 씨와 송 씨를 풀어준 데 이어, 20일 양지마을에서 생활중이던 송현원과 자강원(대전 부랑인시설) 소속의 원생들도 각자가 속한 시설로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04857
생산일자 1998-07-21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유형 도서간행물
형태 단신
분류1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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