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명서> 진흙탕싸움을 걷어치워라
내용
"“공산주의자를 제외한”이라는 조심스러운 단서를 달고 양심수의 개념을 축소한 ‘양심수 사면론’은 그 소심함에도 불구하고 즉각 치졸하기 짝이없는 인신공격과 색깔시비의 융단폭격을 받았으며, 그 결과 당초의 ‘양심수 사면론’은 다시 위축되어 비겁하고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하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식 이하의 ‘양심수 논쟁’의 정체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추악한 진흙탕싸움 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그것은 양심수문제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이해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우리는 우선 “공산주의자를 제외한 양심수를 사면한다“는 김대중 총재의 발상은 결국 우리의 아픈 과거를 되풀이 하자는 구태의연한 주장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안세력이 피의자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기만 하면 바로 공산주의자가 만들어진 어제의 어두웠던 현실을 우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김 총재의 발상은 반인권적이다. 한 인간의 내심을 이유로 그에게 불이익을 가할 수 없다는 원칙은 근대 법치국가의 중요한 인권원칙으로서 널리 인식되어 있다. 국제사면위원회가 오랜 세월 눈부신 인권활동 속에서 확립한 ‘양심수’라는 개념은 바로 이런 법치국가의 인권원칙 위에 세워진 개념인 것이다. 한 정치인이 이런 개념을 함부로 변용 축소시킬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또한 “양심수가 한명도 없다”는 공안기관의 총공세를 눈앞에 보면서 국민과 국제사회를 우롱하는 그 뻔뻔스러움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수많은 인사들을 잡아들이면서도 “양심수가 한명도 없다”고 강변했던 과거의 공안세력은 인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한발짝도 청산되지 않은 채 오늘도 옛모습 그대로 우리 사회의 공안세력으로 남아 있다. 그 공안세력이 “이번에 잡아들인 공안사범들만큼은 진짜로 양심수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들 도대체 누가 그 말을 곧이 듣겠는가?

아울러 우리는 “양심수가 있다면 정치인 사면 등과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이회창 총재의 비상식적인 발언을 규탄한다. ‘양심수’는 구금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든 잘못되어 있는 사람들이며, 그 자체로서 조건없이 석방되어야 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양심수’는 권력형 인권범죄의 주범인 ‘정치인’과 동열에 놓고 맞바꿀 수 있는 존재는 아닌 것이다. 

정치인들은 양심수들로부터 희망을 앗아가는 추악한 진흙탕싸움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그리하여 정치인들은 이제 우리의 인권수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을 약속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 스스로가 받아들인 인권기준을 국내에서 준수할 것을 약속하고 그 인권기준에 맞지 않는 모든 법률을 개폐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1997년 11월 3일
인권운동사랑방"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04928
생산일자 1997-11-03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유형 일반문서
형태 설문조사
분류1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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