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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문민정부의 개혁을 비행기 태우며 온 나라의 언론이 스스로 취했다. 국민은 현기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들려와야 할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요란한 개혁 깃발의 행렬을 구경하며 가슴 두근거리는 사람들에겐 억압적인 법제의 개혁을 알리는 전령도 달려오지 않았고, 과거청산의 뚜껑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인권문제에 대해선 만사해결 되었다는 근거없는 청산주의가 판을 쳤다. 인권문제를 입에 올리면 한물간 흥행사 취급을 받게 되다니···.
2. 발단
사무실 책상 위에서 잠자던 한 인권운동가가 사라졌다. 장기수와 관련된 일을 했다는 과거에 걸려 남영동으로 끌려간 것이다. 남영동의 철문을 바라보다 돌아선 그의 동료들, 손 걷어붙이고 하루에 몇 차례 씩 사건 속보를 만들어 알만한 모든 곳에 팩스를 날렸다. 기다렸다는 듯 청와대와 안기부로 날아드는 세계 곳곳의 항의서한, 꼬리물고 정황을 물어오는 사람들, 그러기를 며칠, 무릎을 탁치는 한사람이 있었으니···
“팩스, 좋아 그거야!”
“네? 팩스요?”
“그래, 인권문제는 신속히 알려내야 하지, 관심을 꺼뜨리지 않고 지속시켜야 하는 거잖아, ‘인권’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구, 매일 내는 팩스신문이면 어때? 팩스라면 배달 문제는 간단하잖아”
“매일 만들만큼 뉴스가 있을라구요”
“왜 없어? 전통적인 인권문제라는건 여전하고, 인권의 영역이 좀 넓어, 그렇다면 건드려야 할 보따리는 충분하지. 정 뉴스가 없으면 오늘은 인권문제 없는 평화의 날이라고 하면 되잖아”
3. 전개…
몸에 꼭끼는 책상과 컴퓨터 한대, 꼬질꼬질한 팩스와 전화기 한대, 타자를 갓 익히기 시작한 기자 한 명, 왕 천하태평 편집인 한 명, 왕 잔소리 발행인이 신문이란 걸 만들기 시작했다.
24시간 사무실 감금을 각오한 이들의 작품-이름하여 <인권하루소식>-이 선을 보인 날, 고관 나으리들의 재산자랑(공개?)이 언론천하를 점령한 가운데 뙤악볕 아래선 자식을 내놓으라는 민가협 어머니들의 농성이, 수배·해고된 노동자들의 90여일의 농성이, 6공 정치수배자들의 수배 해제 요구가 허공을 때리고 있었다. 또한 한국판 로드니킹 사건이라 불린 공무원의 장애인 무차별 구타사건, 정신대 문제를 일본 정부에 맡기겠다는 정부의 포기 선언, 사상을 이유로 스물 아홉의 젊은 교수를 가둔 사회과학원 사건 등 언론에선 외면받고 문민에게 배신당한 속쓰림이 가득찬 이 모든 사건들이 <인권하루소식>이 탄생과 함께 주워담은 특종이었다.
4. 절정
잦은 이사와 사무실 화재로 인한 늑장발송을 제외하곤 천일을 문제없이 달려온 <인권하루소식>은 아직 인권문제가 없는 ‘평화의 날’을 맞지 못했다. 그 대신 바삐 돌아가는 전국의 사회단체와 아침마다 배달 안됐다고 불평하는 형사독자, 글자크기가 작다고 호소하는 노년층, 컴퓨터 통신을 통해 거저보는 젊은 통신인들,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영문판을 만나는 해외독자, 하루소식을 인권분야의 최대취재원으로 삼는 일선 기자 등을 주 5일 변함없이 만나고 있다. 팩스로 시작된 배달체계는 우편배달이나 컴퓨터통신과 인터넷 서비스를 병행하게 되었다. 현재 8권까지 발간된 <인권하루소식> 합본호는 그 자체가 우리 인권의 역사책이며 그때 그 사건을 즉각 검색할 수 있는 편리한 색인으로 인권활동의 쓸모있는 손발이 되어준다. 한편, 이어지는 제보와 각 지방의 통신원, 인권시평에 함께하는 논객, 만화사랑방을 열어준 만평작가 등이 뿌려주는 단비는 달기만 하다.
기계가 견뎌주는 것조차 신기한 제작 환경 속에서 몸살도 맘대로 못앓고 버텨 준 편집진에겐 ‘작은 신문 큰 소식’, ‘신문에 안나는 것 싣는 별난 신문’, ‘우리시대 인권상황판’ 등 <인권하루소식>에 붙여지는 이름들이 피로회복제였다.
96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수여하는 제6회 민주언론상 특별상 수상은 새로운 출발이었다. ‘희귀성’과 ‘독보성’을 넘어서서 하나의 언론으로 인정받은 이상 더욱 시린 칼날이 되어 인권유린의 현장을 내리 칠 ‘전문성’과 ‘책임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5. 결말
오늘은 <인권하루소식>이 1천호를 맞은 날이다. 한 달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우려 속에 출발했는데 벌써 4년을 넘어섰다. 천일야화를 엮을 만큼 많았던 얘기와 주인공들, 아직 결말을 맺지 못한 사건들은 너무도 많다. 그 실마리를 이어가며 <인권하루소식>이 누빌 인권현장에는 ‘진실’과 ‘끝장을 보는 근성’과 ‘작은 승리’와 ‘큰 폭의 변화’가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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