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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범죄는 문민정부에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45년 미군의 진주이후 50여 년간 끊임없이 발생해온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범죄’를 문민정부의 주요 인권항목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 시기에 와서 비로소 미군범죄가 본격적인 사회문제의 하나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93년 발족한「주한미군범죄 근절을 위한 운동본부」(운동본부)의 활동이 기여한 바가 크다.
미군범죄 하루평균 2건 발생
지난 10월 운동본부가 펴낸 주한미군범죄백서에 따르면, 45년 이후 발생한 미군범죄는 무려 10만건이 넘는다. 이 가운데 93년이후 96년 6월까지 발생한 미군범죄는 2천2백93건으로 하루평균 1.8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미군범죄의 심각성은 무엇보다도 무수한 미군범죄자들이 적법한 처벌을 받지 않음에 따라 범죄가 계속 양산된다는 사실에 있다.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앞서 언급한 2천2백93건의 미군범죄 가운데 한국정부가 재판권을 행사한 것은 고작 2%에 불과하다(일본의 경우 95년도 미군범죄에 대한 재판관할권 행사율은 30% 수준). 미군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한미관계에서 비롯된 한미행정협정(주한미군 지위에 관한 협정, SOFA)에 의해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미행정협정 제22조 형사관할권에 관한 규정은 ‘미군군속이나 가족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할 수 없다’(1항) ‘한국에 전속관할권이 보장되어 있는 사건의 경우에도 미국측이 요청하면 한국은 전속관할권을 포기할 수 있다’(2항) ‘형이 확정되어 한국교도소에 수감중인 미군도 언제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7항)며 미군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실질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내 땅 아닌 내 땅 미군공여지
미군에 의한 인권피해는 단순 폭행이나 강력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96년 동두천 쇠목마을 투쟁을 통해 부각된 미군공여지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또하나의 현안이었다. 공여지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주한미군의 사용권이 보장된 땅으로서, 여기엔 미군기지 뿐 아니라, 군사훈련 등을 위해 임시로 미군에게 사용권을 주는 땅까지 광범위한 국토가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집과 땅이 어느날 자신도 모르게 미군공여지로 지정되어 버리고, 미군이 “나가라”고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또한 용산 동두천을 비롯해 전국 44곳에 달하는 미군기지에 대해서 미군은 한푼의 사용료도 없이 마음대로 사용 처분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반환여부는 전적으로 미군의 의사에 달려 있다.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입어도 정부는 아무런 배상이나 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67년 발효된 한미행정협정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학계와 사회단체 등에서 미군범죄 근절 방안으로 △미군범죄 전담 수사기관의 설치 △미군 수감시설의 확충 및 재조정 △피해자 손해배상절차 간소화 및 손해배상 창구 확대 △미군 사병에 대한 교육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결되어야 할 것은 한미양국간의 불평등조약인 한미행정협정을 개정하는 일이다.
오만한 가해자, 조아리는 피해자
95년 오키나와 주일미군에 의한 성폭행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시 미국은 ‘주일미군 반성의 날’을 선포하고 클린턴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표명하며 일본국민들에게 사과를 표시했다.
반면, 95년 미군의 충무로 난동사건 당시 제임스 레이니 주한미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국민들은 미군범죄가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처럼 유도되고 있으며, 문제는 미군이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무책임한 언론이 격앙된 국민들에게 특유의 선정적인 방식으로 이를 묘사하여 국민들의 반미감정을 유발하는 데 있다.”
노골적으로 무시당하면서도 한껏 조아리기만 하는 정부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미군범죄의 근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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